인플레이션 공포가 확산되고 이에 맞춰 지속적인 금리 인상이 단행되면서 이른바 돈줄이 말라가자 의료기기 스타트업들이 잔뜩 움츠리며 차선책을 찾아 나서고 있다.
특히 밸류에이션(기업 가치)을 입증해야 하는 후기 투자 라운드 기업들의 한숨이 더욱 깊어지고 있는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일부 테마와 초기 라운드에는 여전히 투자가 이어지며 양극화가 나타나는 모습이다.
2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공포과 금리 인상, 기술특례상장의 실효성 논란 등이 맞물리면서 의료기기 스타트업들이 자본 확충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IPO(기업 공개)를 앞둔 A기업 대표는 "지난해 후기 라운드를 진행할때만 해도 솔직히 밀려드는 돈을 어떻게 가려 받을까 고민을 했는데 지금은 180도 상황이 변했다"며 "내년도 IPO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진행할 수 있을지 솔직히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그렇다고 시리즈D를 진행하기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며 "다른 기업들 상황을 봐도 밸류에이션이 마구 깎여나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자다가도 진땀이 흐른다"고 덧붙였다.
이는 비단 A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들끓던 벤쳐 투자 열기가 금리 인상으로 급격하게 경색되면서 상대적으로 목돈을 유치해야 하는 후기 라운드 스타트업들의 한숨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일단 시장에 돈 자체가 말라가고 있는데다 엑시트(투자 회수) 로드맵이 엉킨 벤쳐캐피탈 등이 투자 규모를 지속적으로 줄이며 방어 전략에 나서고 있는 이유다.
여기에 바이오와 헬스케어 열풍의 배경이었던 기술특례상장 제도에 대한 실효성과 안전성 논란이 지속적으로 일고 있는 것도 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결국 거래소나 코스닥 본부 등도 이러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IPO를 준비중인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미 탈락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IPO 준비를 진행중인 B기업 임원은 "솔직히 당연히 상장될 것으로 믿었던 몇몇 기업들이 예비 심사에서 줄줄이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 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가 들썩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확연하게 기특 상장에 대한 심사 기류가 변했다는 것이 느껴진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게다가 그나마 문턱까지 가고도 수요 예측에 실패하는 사례들도 늘고 있다"며 "우리 뿐만 아니라 IPO를 준비하던 헬스케어 기업 대부분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경영진은 물론 투자자들 간에 갈등을 빚는 사례들도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밸류에이션을 부풀려 가던 전략들이 꺾이면서 이해 관계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A기업 대표는 "솔직히 경영진과 초기 투자자들, 후기 투자자들간에 이해 관계들이 많이 얽혀있는 상황"이라며 "우리는 돈이 필요하고 그들은 지분 가치를 지키고 싶어하니 꼬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부 차세대 테마로 분류되는 기업들이나 초기 라운드 투자는 오히려 활황을 띄는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급성장 테마로 올라선 원격진료나 메타버스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원격진료 스타트업 중에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는 닥터나우는 이달 400억원 규모의 시리즈B를 성공리에 마무리지었다.
의료 메타버스 스타트업인 뉴베이스도 마찬가지다. 뉴베이스도 BNH인베스트먼트와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등으로부터 시리즈A로 40억원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목돈이 필요한 시리즈C 이후 단계보다는 초기 투자에 그나마 남은 자금들이 몰리고 있는 셈이다.
투자사 출신의 C기업 임원은 "IPO를 통한 엑시트가 투자사 입장에서는 최적의 시나리오이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는 그만큼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돈을 쪼개 초기 투자로 지분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