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을 저지하기 위해 범의료계 13개 단체가 연합체를 구성하면서 향후 활동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정도 숫자의 보건의료단체가 특정 현안에 대응하기 위해 연합체를 구성한 것도 전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간호법 반대여론이 범의료계로 확장되고 있다. 기존에 의사,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요양보호사 주도로 이뤄졌던 간호법 저지활동이 방사선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임상병리사 등으로 확대된 상황이다.
해당 직역 대표단체들은 지난 14일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간담회를 개최하고 간호법 저지라는 공동의 목표로 연합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는 기존에 구성돼있던 간호법단독법 저지 10개 보건의료단체 비상대책위원회에 없던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가 새로 합류하면서 확장 운영되는 식이다.
앞서 의협이 여러 의료계 현안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직역단체와 연대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대부분 직역을 아우르는 연합체가 구성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 의료계 한 관계자는 "의협이 이 정도로 많은 단체와 연합체를 구성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그동안 연합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의료법에 해당하는 직역과 이뤄지는 식이었다"며 "하지만 이번 연합체는 의료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지는 않지만 함께 일하는 직역들이 포함됐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의료기기사계는 간호법이 각각의 단독법을 발의할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간호법으로 간호사의 업무범위가 대폭 확장됨에 따라 영역침범 우려로 연합체에 동참한 모습이다.
이와 관련 방사선사협회 조영기 회장은 "간호법은 진료지원인력(PA)의 초음파, 엑스레이, 온열치료기 등의 사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며 "간호사 면허만 있으면 의료기기사가 실시하는 대부분의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얘기. 그렇다면 면허가 의미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기사총연합회 내부에서도 간호사가 의료기사 업무영역의 상당 부분을 잠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다"며 "직역 존폐에 위협을 느껴 간호법 반대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연합체 구성을 통해 얻어지는 강점은 간호법 반대에 설득력이 생겼다는 점이다. 기존엔 간호법 쟁점이 의사와 간호사 구도로 나뉘어 강자가 약자를 탄압한다는 프레임이 씌어졌었다. 하지만 이제 그 구도가 간호사와 범의료계로 전환된 셈이다. 이에 따라 국회나 국민에게 간호법의 문제점을 전달하는 데 힘이 실릴 것이라는 게 연합체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 연합체 관계자는 "간호법이 다른 직역의 업무를 침해한다는 것을 각각의 직역의 입장에서 전달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특히 의료현장은 매우 복합적인데, 본 연합체는 모든 보건의료인력의 처우개선을 위한 각각의 현장에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있다"고 설명했다.
연합체 참여단체의 각 회원 수를 고려하면 그 규모가 100만 명을 넘어서는 만큼, 모든 단체가 참여한 궐기대회가 개최될 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간담회를 개최한 대한의사협회는 연합체 궐기대회 개최 여부에 확답을 내놓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각 단체의 의견 수렴이 필요해 아직 구체적인 로드맵이 마련되지 않은 만큼, 관련 내용을 공개하긴 이르다는 설명이다. 우선은 각 단체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전달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의협 박수현 대변인은 "간호법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간호사의 업무를 다른 대부분 직역의 업무와 겹치게 만든다는 점"이라며 "본 협회는 동등한 위치에서, 간호법에 대한 여러 직역의 우려가 소외되지 않고 더 효과적으로 전달될 방안을 고민할 방침. 궐기대회를 개최해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체 활동이 투쟁보단 좌담회 등 소통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은 나온다. 모든 직역이 간호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종합적인 처우개선 방안을 제시하면 자연스럽게 간호법의 당위성이 퇴색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경우 무리하게 궐기대회를 개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와 관련 한 연합체 참여단체 관계자는 "참여단체들은 간호법에서 지목됐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것이지 이를 무조건 반대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다"라며 "전체 보건의료인력 처우를 개선할 대안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진다면 굳이 간호법이 필요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