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대형병원 몸집 경쟁의 그늘
2000년대 중반부터 경쟁적으로 분원 설립을 공포했던 대형병원들이 자금난 등으로 사업에 난항을 겪으면서 공수표를 날렸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학병원 설립을 고대했던 시민들은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으며 분원 설립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형병원 분원 설립 계획 급제동
23일 병원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등 분원 설립을 추진했던 대다수 대학병원들이 사실상 사업을 중단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2009년 오산시 내삼미동 256번지 일원 9만4673㎡ 부지에 600병상 규모로 분원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서울대병원은 이 분원을 향후 1000병상까지 확대하겠다고 공포하고 1800억원의 예산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분원은 첫 삽도 뜨지 못한 상태다. 특히 1년여 동안 8천만원을 들여 진행한 타당성 검사를 다시 한번 실시하기로 결정하면서 사실상 착공 여부가 불투명하다.
연세의료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0년까지 용인시에 800병상 규모 동백 분원을 설립할 계획이었지만 아직까지 설계조차 마무리 하지 못했다.
특히 최근에는 공사 지연으로 병원 부지에 대해 7천여만원의 지방세가 부과되면서 설상가상의 상황에 처했다.
고대의료원도 다양한 사업들을 내놨지만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우선 500병상 규모로 안암역 인근에 설립하려 했던 첨단의학센터는 자금 사정과 노조의 반대 등으로 삽도 뜨지 못한 상황이다.
또한 지난 2008년 익명의 60대 여성이 기부한 400억원대 청담동 부지는 아직 세부적인 활용 계획도 나오지 않았다.
이밖에 분원 설립을 발표했던 대다수 병원들도 결과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경기도 안산시에 700병상 규모의 양·한방 병원을 짓겠다던 경희대병원은 토지 보상 문제로 사업을 전면 백지화 한 상황이며 수원 캠퍼스 분원도 사실상 물 건너 갔다는 분석이 많다.
또한 을지병원은 수원 영통 지역에 2011년까지 1200병상 규모의 분원을 설립한다고 발표했지만 차일 피일 착공을 미루다 갑자기 의정부 미군 공여지에 1000병상급 대형병원을 짓겠다는 계획을 내놔 비난을 사고 있다.
순천향의료원도 금천구에 1천병상 종합병원을 설립하겠다며 지자체와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이후 사업은 답보상태다.
경쟁심에 타당성 검토 뒷전…"조건 강화해야"
그렇다면 과연 대학병원들의 분원 설립 계획이 이처럼 도미노같이 좌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다수 병원 관계자들은 이들 병원들이 과도한 경쟁 심리로 치밀한 분석 없이 분원 설립을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A 대형병원 관계자는 "예산을 마련하지도 않고 나아가 확보할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분원 설립을 발표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다른 병원이 하니 우리 병원도 저지르고 보자는 유치한 경쟁 심리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분원 설립을 발표한 대다수 대학병원들은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업이 좌초됐다.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암 전문병원 건립 등 연세의료원내 다양한 신증축 사업이 예정된 가운데 용인 분원 설립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용인 분원 설립 계획은 차일 피일 뒤로 밀렸고 결국 예산 부족을 이유로 백지화를 검토하는데 이르렀다.
고대의료원도 마찬가지다. 의료원은 첨단의학센터 설립비용으로 3천억원을 예상하고 대학에서 1천억원을,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2천억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2천억원에 달하는 외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세부적인 계획은 부실했고 결국 수년째 자금 유치에 실패하면서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지자체들의 무모한 병원 유치 경쟁도 한 몫했다. 민선 지자체장들이 표심을 의식해 무리하게 병원 유치를 서두르면서 오히려 민심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실제로 서울대병원이 진출하기로 결정했던 오산시는 부지는 물론, 전기와 통신 등 기반 시설 설치에 대한 모든 지원을 약속했다.
금천구도 마찬가지. 대학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부지 제공 등 다양한 유인책을 내놨지만 장미빛 미래만 기대하고 검토를 게을리 한 결과 구민들의 실망감만 배가시켰다.
이에 따라 분원 설립에 필요한 제반 조건들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신축 사업을 공식화한 B대병원 고위 보직자는 "아무런 대책없이 공수표를 날리는 대학병원들은 단호하게 제재를 가해야 한다"며 "결국 국민과 환자를 우롱하는 파렴치한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적어도 분원 설립을 추진한다면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 계획과 예산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며 "실제로 분원 설립을 발표한 병원 중 미리 신축 예산을 마련한 한림대의료원은 무사히 동탄 분원을 개원하지 않았느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