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조정법의 입법목적은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상의 피해를 신속·공정하게 구제하는 한편 보건의료인과 병원의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하자는데 있다. 이는 환자와 의사 측의 이해 내지 이익을 적절하게 조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제도를 도입하게 될 경우 환자 측에서는 신속한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의사(병원)는 피해자의 소란행위나 방어진료도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한 가지 방편이 될 것이므로 어느 정도 위와 같은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분쟁조정법 하위법령에서 무과실 책임주의를 도입하는 것은 정책적·법제도적 측면에서 큰 무리가 없다.
다만, 국가 통제하의 사회보장적 성격을 띠고 있는 현행 의료제도와 산업재해 등 다른 분야와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금의 재원을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
국가 통제하의 사회 보장적 성격을 띠고 있는 현행 의료제도에서 의료기관은 국가의 통제 아래 환자를 거부할 수 없고, 국가가 국민의 건강에 대한 책무를 위임해서 의료 행위를 강제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이는 국가가 모든 보상의 주체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제도에 관한 논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분쟁조정법안의 입법 추진과정에서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이유로는 먼저,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을 국가책임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실책임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 민법체계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아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민사법상 과실 책임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현행 우리나라의 원자력손해배상법 제3조, 환경정책기본법 제31조, 근로기준법 제78조 등에 무과실책임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이를 의료분쟁조정법에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해야 하는 궁극적인 책임은 의료행위를 하는 의료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있으므로 국가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로 인한 국민의 피해를 구제해 건강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할 책무가 있다.
이와 함께 의료사고의 피해로 인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경우 이에 대한 최소한의 피해 구제를 하는 것은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결국 국가의 의료사고피해 구제제도의 도입은 법리적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에 대한 복지적 측면에서의 사회보장을 강화하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 결정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무과실 보상제도에 재원을 분담하라는 것은 산부인과 의사의 자존심과 관계가 있다.
무과실 보상에 있어서 그 재원을 국가가 부담할 때 시행 되어야 한다. 무과실 산과 사고의 재원을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부담시킨다면 세계에서 최초로 무과실 의료 분쟁이라도 그 비용을 내는 최초의 의사가 될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에 의해 출연된 무과실 보상기금이라면 무과실에 대한 판단 자체의 공정성이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
의료사고라고 생각하는 최악의 결과 앞에 어느 산모가 산부인과 의사들이 낸 돈으로 운영되는 무과실을 판단하는 의료사고 보상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명백히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조정이나 중재의 어떤 결과라 할지라도 의료 사고라고 생각하는 보호자들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은 소송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오히려 사회적 비용만 증가 시키는 제도로 유명무실 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 명백한데 (법에 명시된 국가와 보건의료 개설자에게 부담하는 것이라면 입법 취지와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지만) 산과 분만의사들이 부담한 재원으로 운영되는 의료사고 보상심의위원회 결과를 의료 사고 피해자가 신뢰 할 수 있겠는가? 에 대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보건복지부에서 하위 법령제정과 관련한 산과 무과실 보상의 재원을 산부인과 의사에게 전가 시키려는 노력이 실제로 시행된다면, 산부인과 의사들은 이를 전면 거부 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어렵게 만든 의료분쟁조정법이 유명무실해진다면 그 피해가 국민에게 고스란히 가게 되는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하위 법령제정과 관련한 산과 무과실 보상의 재원을 산부인과 의사에게 전가 시키는 것이 가시화 된다면 회원들의 정서상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는 분만실을 운영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나마 저수가에도 사명감 하나로 분만실을 운영 중인 대다수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실 폐쇄를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