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1일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의료분쟁조정법)'이 국회를 통과해 4월 7일 공포됐다. 의료분쟁조정법의 입법작업이 1988년부터 추진됐으니 23년 만에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의료분쟁이 발생할 경우 종전의 의료법 제71조 및 동법 시행령 제36조에 따라 "관계 당사자는 그 원인이 발생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관할 시·도지사에게 분쟁의 조정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공인기관에 접수된 의료분쟁 건 중 위 조항을 통해 분쟁해결을 시도한 경우는 겨우 0.5%였다. 더구나 분쟁해결로 이어진 경우까지 드물어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지적을 피하기도 어렵다. 이 수치들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09년도 공인기관 의료분쟁 접수현황' 통계표에 근거한 것으로 다른 해의 통계치와 차이를 보일 수는 있지만 그 차이는 필자가 논하고자 하는 바를 흐릴 수준이 아니리라.
다행히 이번에 제정된 의료분쟁조정법에 따라 내년 4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조정중재원)이 출범한다. 오랜 산고를 거친 후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조정중재원은 벌써부터 의료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해줄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기구로 역할하게 될 것이라는 사회적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의료사고에 대한 유형적 분석과 통계작업, 대책마련을 위한 연구작업 등을 통해 의료사고 예방에서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나 한국소비자원 등 공인기관에 접수된 의료분쟁 건은 해마나 증가일로에 있어 2009년에는 3409건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몇 년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의료분쟁 발생 시 공인기관을 통하지 않고 의료기관이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비율이 약 86%라고 발표했다.
이러한 데이터에 근거해 2009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의료분쟁 건수는 2만4350건으로 추산할 수 있다. 또 국민들의 권리의식이 점차 높아짐에 따라 의료분쟁 건수가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음을 감안해 전문가들은 향후 발생할 의료분쟁은 연간 3만여 건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의료분쟁은 의료사고로 인한 다툼을 의미한다. 그리고 의료사고는 사람의 생명·신체 및 재산에 대하여 피해가 발생한 경우다. 그러다 보니 분쟁의 성격이 더없이 치열하고 심각해 극단으로 달리기 일쑤다.
분쟁당사자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함께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면서 분쟁해결에 매진하게 돼 사회적·국가적 손실 또한 만만치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조정중재원에 큰 기대를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정중재원설립추진단은 출범 후 5년까지는 연간 발생하는 의료분쟁의 20%(6000여 건)가 조정중재원을 통해 처리될 것이고, 그 후에는 전체 의료분쟁의 50%(1만5000여 건)가 처리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추진단이 예측한 수치까지는 아닐지라도 의료분쟁 당사자 상당수가 조정중재원의 문을 두드리게 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다.
제도 운영에 있어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의료사고 피해자가 완벽한 증거자료를 준비해 조정을 신청하더라도 피신청인인 의료기관 등이 조정에 응하지 않는 경우다. 이 경우 의료분쟁조정법 제27조 제8항에 따라 피해자의 조정신청을 각하하도록 되어 있다.
조정중재원 업무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조정신청이 접수되면 피신청인은 의무적으로 조정에 임하도록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하더라도 우월적 지위에 있는 피신청인에게 심대한 불이익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피신청인은 조정절차 진행 중 제시된 조정부의 조정안을 거부할 수가 있으며 그럴 경우 조정불성립으로 종결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언론분쟁을 해결하는 ADR기구로서 아주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절차를 조정중재원의 모델로 삼을 것을 제안하고 싶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조정신청이 접수되면 언론사인 피신청인이 반드시 조정에 임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피신청인은 조정과정에서 중재부의 조정안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 때문에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분쟁해결은 아주 효율적으로 이루어져 최근 3년간 피해구제율이 70%를 넘겼다.
또 2010년에 언론중재위원회를 이용한 신청인과 피신청인이 평가한 종합만족도가 각각 80.3점과 75.4점으로 나타났다. 신청인뿐만 아니라 피신청인도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창기에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며 비협조적이었던 언론사들도 이제는 기사에 대한 민원전화가 오면 언론중재위원회에 가서 다퉈보자고 할 정도다.
소송은 대개 승자와 패자로 갈리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다. 하지만 언론중재위원회의 사례를 통해 알아본 바와 같이 ADR절차는 당사자 모두가 만족하는 윈윈(win-win) 게임이 될 수가 있다.
의료분쟁사건에서 피신청인의 지위에 오르게 될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이 적극적으로 조정중재원을 통해 분쟁사건을 해결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가 결국 분쟁당사자 모두에게 유익한 것임을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도 체득할 수 있다는 후발자(後發子)로서의 이점(利點)을 누리길 바란다.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조정중재원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충족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갓 출범한 기구에 대한 대국민 홍보. 둘째, 의료분쟁은 조정중재원을 통해 해결한다는 국민(특히 의료인) 인식의 전환. 셋째, 조정중재원의 전문성·공정성·합리성 갖춘 업무 시스템 구축이다. 먼저 이 세 가지 사항이 갖춰져야만 머잖아 돛을 펴게 될 조정중재원호가 순풍을 받아 순항을 지속할 수 있으리라.
조정중재원이란 존재가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의 한 축을 맡게 되고 나아가 언론중재위원회와 같은 세계적인 명품 ADR기구로 발돋움하게 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