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집행위원 겸 인문사회분과 위원장, 대한적십자사 보건사업자문위원장, 다국적제약산업협회 규약심의위원회 위원장, 대한의사협회 의사시니어직능클럽 대표 등.
이 같이 화려한 직함이 어울릴만한 인물은 누구일까. 여느 정치인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미 4년 전에 의대를 퇴직한 노교수다.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라는 말이 희자화되고 있는 지금 70세의 나이에도 어느 현직 교수보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의사가 있다. 바로 맹광호 전 가톨릭의대 교수.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는 맹광호 전교수는 약력을 줄줄이 풀어 열거하면 지면 한면이 부족할 정도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매년 새로운 약력을 만들어 가며 도전을 지속하고 있다.
"정년 후에도 이렇게 빠쁜 것이 좋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분명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할 일을 놔둘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또 바빠지고 분주해지고 하는 거죠."
실제로 그는 가톨릭의대에 재직하는 동안 열거할 수 없는 만큼 많은 일을 했다. 우선 예방의학의 선구자로서 예방의학회와 역학회 회장을 지냈고 의학교육학이라는 말이 생소할 때 학회를 만들어 의학 교육에 인문학을 포함시켰다.
또한 의료윤리에 앞장서며 의료윤리학회 창립을 이끌었고 서울의대 박재갑 교수와 대한금연학회를 만들어 금연 홍보에도 나섰다.
이러한 와중에도 가톨릭의대 학장과 보건대학원장을 맡아 의대를 반석 위에 올려 최근 자랑스런 가톨릭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퇴임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하나의 사건"이라고 못 박았다.
맹 교수는 "정년퇴임을 하면서 가장 좋아진 것은 출퇴근이 없어진 것"이라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도적으로 계획해서 실행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전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그는 퇴임 후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백화점 문화센터에 글쓰기 강좌를 등록한 일이다.
학생 때부터 꿈꿔왔던 집필에 대한 욕구를 퇴임 후에야 끄집어낸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글 공부가 몇 년이 지나다 보니 더욱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모 대학 문예창작과의 문을 두드렸다.
또한 문화센터를 다니며 정리한 수필들과 문예지에 소개했던 글도 정리중이다. 이렇게 모아진 글이 벌써 한권 분량이 돼 오는 3월에는 수필집도 발간할 예정이다.
맹 교수는 "사실 도전이라기 보다는 내 자신을 찾는 과정일 뿐"이라며 "변변치 않은 글을 쓰며 나를 가다듬는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욕심은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최근 윤리와 철학 공부를 위해 한국학 중앙연구원 대학원에 원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미 그는 제1회 한국학 시민대학원 과정을 마친 상태. 의학자도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기 위함이다.
맹광호 교수는 "학국의학교육학회를 만들고 학회장을 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했던 일이 의학교육에 인문학을 포함시키는 일이었다"며 "때 마침 의대 인증평가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관여하면서 이 내용을 평가항목에 포함시킬 수 있어 뿌듯했다"고 소회했다.
이렇게 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그이기에 정년 퇴임을 앞둔 후배들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그에게 돌아온 답변은 한줄의 문장.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이라는 잠언 시집의 제목이었다.
맹 교수는 "젊어서부터 의학 이외에 해보고 싶었던 공부나 일을 정년이 되기 전에 차근차근 준비해 놓아야 한다"면서 "요즘 평균 수명이 크게 길어졌을 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대학이나 대학원 진학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인생 경험과 학업 이력이 있기 때문에 몇 년만 공부해도 그 분야의 전문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며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가끔은 자신의 재능인 의학을 통해 봉사활동을 펼친다면 얼마나 값지고 즐거운 제2의 인생이 되겠느냐"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