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복지부는 주사제로 허가받지 않은 일반 화장품인 '이노티디에스 드레이닝 피피시', 일명 PPC 주사제를 투여한 의사 44명에 대해 일괄적으로 의사면허정지 1개월 처분을 내렸다.
이들 의사 중에는 환자 뿐만 아니라 자신과 부모, 병원 간호사, 간호조무사에게 PPC를 투여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행정처분을 받자 상당수 의사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복지부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서울고법은 행정처분 취소 판결을 선고했다.
이 사건의 맹점은 이미 잘 알려져있다시피 복지부가 현장조사조차 하지 않고 행정처분을 내렸다는 점이다. PPC주사제를 구입한 병의원 162곳을 대상으로 '무허가 비만치료 주사제 사용실태 조사'라는 설문조사를 한 게 전부다. 이 조사에서 사실을 솔직히 인정한 의사들만 처분을 받았다. 자발적 진술에만 의존했을 뿐 별다른 추가조사를 하지도 않았다. 결국 복지부는 행정소송에서 크게 패소하는 결과를 자초했다.
더 큰 문제는 복지부가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무더기 행정처분을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메디칼타임즈가 최근 보도한 바와 같이 복지부는 지난해 검찰 수사에서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가 있는 의사 319명, 약사 71명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서를 발송했다. 이들은 제약사와 도매상으로부터 3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은 정황이 있다.
그러나 복지부는 사실 입증을 하지 못했다. 검찰이 혐의를 입증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복지부가 행정처분을 강행하면 이들 중 상당수가 행정소송을 제기할 게 뻔하다. 몇년간 지루한 소송에서 의사들이 이긴다고 해서 명예가 회복되는 것도 아니다.
의협도 얼마전 이 사건과 관련 복지부에 항의공문을 보냈다. 의협은 "혐의 사실의 확정을 위한 어떠한 개별 조사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현행법상 이들은 무죄를 추정받아야 할 것이며, 어떠한 형벌이나 행정처분의 대상도 아니라고 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현재 범정부 차원의 리베이트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앞으로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을 받는 의사들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 약사를 엄벌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대원칙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혐의를 입증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공권력이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비록 복지부가 수사권이 없다 하더라도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