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치킨 게임'은 한밤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어 피하는 사람이 지는 경기이다.
핸들을 꺾은 쪽은 겁쟁이로 몰려 명예롭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어느 한 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게임에서는 둘 다 승자가 되지만, 결국 충돌함으로써 양쪽 모두 자멸하게 된다.
대한의사협회와 건강보험공단의 감정 싸움이 치킨 게임을 연상시킬 만큼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22일 의협은 모 일간지에 전면광고를 내고 공단의 방만한 경영을 문제삼았다.
공단의 방만 경영, 국민 부담, 건보 재정위기를 거론하면서 슬그머니 보험혜택을 줄이고 의료기관에 치료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있어 진료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공격한 것.
건보공단이 온라인 포털사이트 등에 상습적으로 악플을 게시한 네티즌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한지 불과 하루만이다.
의협과 공단은 포괄수가제 시행 전부터 사사건건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이젠 그 대응의 수위와 속도가 점차 격해지는 양상이다.
의협은 공단이 먼저 조직적으로 포털사이트 토론방에 올라온 포괄수가제 반대글에 악의적인 댓글을 달고 있다고 폭로했다.
공단 역시 일부 표현을 가지고 의료계가 과잉 반응하고 있다며, 오히려 공단 직원들이 일부 의사들의 신상 털기, 전화·문자 테러로 고통받고 있다고 반격했다.
앞서 의협은 이 문제로 공단을 직접 항의 방문, 공단의 악의적인 댓글을 공개했고, 공단 측도 포괄수가제 찬성글에 달린 악의적인 댓글을 공개해 응수했다.
격해진 감정 때문에 의협과 공단은 소송전도 불사할 정도로 팽팽히 맞서고 있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의협과 공단 모두 상당한 피해가 예상되기도 한다.
공단은 22일자 전면광고의 내용을 문제삼아 법적대응 등 대책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누구도 핸들을 돌리고 있지 않고 있는 상황을 보며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치킨 게임'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건 비단 기자뿐일까.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고 화해의 손을 먼저 내미는 쪽은 누가 될까?
양측 다 '화해는 곧 패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먼저 손 내밀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