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이하 조합)과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이하 협회)가 협력양해각서(MOU)에 따라 설립한 '의료기기 정책연구원'(이하 정책연구원)이 의료기기 정책연구보다는 외부용역 수입을 올리기 위한 사설 연구소로 전락했다는 비판과 함께 연구원 폐지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28일 의료기기업계에 따르면, 정책연구원은 지난 2009년 10월 21일 조합과 협회 간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위한 협력합의서 체결에 따라 설립됐다.
정책연구원은 매년 표준통관예정보고(EDI) 수수료 수입금 중 30% 이상을 지원 받고, 조합 추천 3인ㆍ협회 추천 2인ㆍ외부인사 1인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후 2010년 8월 31일 현판식을 갖고 본격 출범해 ▲국산 의료기기 정책 개발 및 수출 지원 ▲외국 의료기기단체와의 국제 교류협력 ▲의료기기 허가관리제도 개선 등에 관련된 정책연구 수행을 목표로 운영에 들어갔다.
특히 정책연구원 설립 당시 의료기기업계는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연구와 더불어 의료기기 제조업체와 수입업체가 서로 협력해 국내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큰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감은 실망감을 넘어 정책연구원 폐지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상황으로 전락했다.
의료기기업계 일각에서는 1년 예산이 3억원에 달하는 정책연구원이 의료기기업체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연구 내용 또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 정부기관의 연구결과와 뚜렷한 차별점이 없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책연구원이 2011년 실시한 연구 내용은 국내외 의료기기시장 및 산업분석 보고서, 고령친화 의료기기시장제도 및 기업현황, U-헬스케어산업 시장 및 기업 분석 등으로 이는 진흥원에서 발행되는 자료와 차별점이 없고, 일부는 질적인 부분에서 진흥원 자료에 크게 미치지 못해 활용도가 낮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하는 시장조사 역시 의료기기업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진흥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시장조사를 그대로 베낀 수준에 불과해 정책연구원의 연구능력이 심각하게 우려된다"고 전했다.
더욱이 정책연구원이 본연의 정책연구보다는 수익사업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해 외부용역으로 1억원 이상 수익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 정책연구원이 정작 설립 목적인 의료기기산업 발전과 관련된 의료기기 허가관리제도 개선이나 건강보험에 대한 연구내용은 전무하다는 것.
여기에 연회비 250만원을 받고 제공하는 '프리미엄 멤버서비스' 역시 정책연구원이 수익을 올리기 위한 '사설 연구소'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의료기기단체 한 관계자는 "정책연구원의 연구 주제 선정 및 운영에 있어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고, 연구주제 실효성에 대해서도 평가할 수 있는 외부감사가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정책연구원이 의료기기업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일반적인 외부 연구소 역할만을 고집한다면 최근 발족한 의료기기정보지원기술센터로 이전하거나 폐지하는 등에 대해서도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협회 소속 수입업체 관계자 역시 "협회 내부적으로도 정책연구원이 당초 설립 취지와 다르게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높은 게 사실"이라며 "심지어 협회 주무관청인 식약청에서도 협회 감사보고서를 통해 정책연구원 폐지를 권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의료기기 정책연구원 강태건 실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답답함을 토로했다.
강 실장은 "정책연구원은 의료기기 정책연구뿐만 아니라 각종 교육 진행, 보고서 발간, 세미나 개최, 컨설팅 지원 등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업계 무관심으로 이러한 역할들이 잘 알려지지 않아 답답하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어 "일각에서는 정책연구원이 외부 용역에 치중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 역시 현실적인 재정 어려움을 타파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다만 그는 "좀 더 내실 있는 정책연구와 산업 발전 프로그램에 집중하기 위해 앞으로 외부 용역을 줄이고 자체 사업을 더 많이 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