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 속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어…"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즐겁게 춤을 추다가…"
지난 5일 서울시립어린이병원 6층에선 연신 피아노 연주에 맞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울시어린이병원학교와 발달장애 치료센터에서 장애아를 위한 치료가 한창이었다.
61병동 입원실에서도 박수치며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여느 병원의 입원실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이 병원이 다른 의료기관과 다른 점은 대부분의 소아 환자들이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점이다. 심각한 질환이나 장애가 있어 시설에서 지내기 힘든 아이들을 치료한다.
"존재 자체가 공공적…대학병원에서도 환자 전원"
얼마 전 봉천동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가 들어왔다. 올해 들어서도 벌써 몇번 째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시설에서는 생활이 어려운 아기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대학병원에서 전원시킨 중증 어린이 환자가 중환자실 병동에 입원했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어야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지만 대학병원 측은 이미 치료가 끝났고 언제 증상이 호전될지 알 수 없는 환자를 입원실에 둘 수 없다며 전원을 요청해왔다.
이제는 병실이 부족해 대기를 해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대학병원들의 연락이 늘었다.
만약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되는 이 병원이 당장 사라지면 버려진 아이들의 생사는 기로에 놓일 게 뻔했다.
이 병원에선 '공공병원이 민간병원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은 불필요했다. 병원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었다.
이 병원의 한 의료진은 "우리 병원을 4차 의료기관이라고 한다. 대학병원에서도 감당안되는 환자를 전원시키니까 4차병원이라 할만 하지 않느냐"라면서 자부심을 보였다.
대학병원에서 전원 온 환자가 입원 중인 병동은 조용했다. 아예 거동하지 못하거나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중증 어린이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웃음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이들은 간호사, 간병인은 물론 부모를 대신해 줄 보모까지 별도로 두고 있었다.
또한 서울시어린이병원에서 만난 의료진들은 외래진료와 입원환자 진료 이외에도 공공의료 사업을 개발하고 추진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소아정신의학과 서동수 봉직의는 지난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중고등학교를 직접 찾아가 ADHD교육 프로그램을 맡아왔다고 했다.
ADHD치료의 필요성이 부각되지 않았을 때라 꺼리는 학교도 상당수 있어 힘들었지만 꾸준히 사업을 이어온 것.
하지만 최근 들어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교육 프로그램도 많아지면서 ADHD프로그램 대신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ABA행동치료의 필요성을 알리고,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서동수 봉직의는 "민간병원이 ADHD프로그램을 많이 하고 있는데 우리가 나설 필요는 없다.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공공의료 사업을 계속해서 발굴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자폐 등 발달장애가 심각한 아이들은 공격성이 강해 자해는 물론 주변 사람을 공격하기 때문에 가족 전체가 고통받는 것을 보고 이들을 위한 공공의료의 역할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얼마 전 국회에 상정된 발달장애인지원법 제정 과정에서도 그 필요성을 알리는 데 함께 하는가 하면 이와 관련해 발달장애지원센터 시범운영 사업을 적극 추진 중이다.
모현희 서울시립어린이병원장은 이 모든 게 서울시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이 병원은 매년 100억원 규모의 적자가 발생한다.
그는 "만약 서울시의 예산 지원이 없었다면 공간, 인건비 부담으로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라면서 "수익을 위해 입원일수를 최소화 해야 하는 상당수 민간병원에선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시로 병원 경영효율화 방안 논의해"
서울시가 연 1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어린이병원도 나름의 경영효율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소아정신과 외래 수납창구에선 간호사가 분주하게 환자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오전 11시 예약환자가 취소하면서 이후 대기환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내원할 수 있는 지 여부를 확인하는 듯 했다.
모현희 병원장은 "의료진들 스스로도 환자를 많이 진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공공의료 사업을 개발, 추진한다"고 했다.
그는 "이는 불필요한 환자에게 과잉진료하라는 얘기와 다르다. 적어도 몰라서 오지 못하는 환자는 없도록 알리고, 환자가 왔을 때 성심껏 진료해 보다 많은 환자가 찾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공병원에서 경영효율화를 강조하느냐라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 없이 "당연한 일"이라고 답했다.
그는 "공공의료라고 경영효율화와 무관하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지금도 수시로 병원 경영효율화를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이를 통해 치료재료, 의료장비 공동구매 등 경영을 효율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계속해서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