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의 특수한 의료환경 때문일까. 통상 학회 마지막 세션은 발표자가 민망할 정도로 자리가 텅텅 비기 마련이지만 '삭감액 0원 도전하기' 강의는 그렇지 않았다.
자리를 꽉 채운 참석자들은 강연자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을 보였고, 때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14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5회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춘계학술대회 모습이었다.
좌장으로 나선 신창록 의사회 부회장은 세션에 앞서 "강의명이 매력적이고 섹시한 타이틀이다. (한국 의료)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인지 많은 분들이 자리를 뜨지 않으셨다"며 열띤 현장 분위기를 치켜세웠다.
이어 등장한 발표자 김종률 보험이사는 자신이 경험하고 분석한 사례를 일목요연하게 소개하며 회원들의 관심을 끌어냈다.
강의 자료는 120페이지 분량의 책으로 만들어 사전에 배포됐고 여기에는 기본적인 삭감 피하기 방법과 주요 삭감 사례 등이 수록됐다. 준비된 수백권의 책은 금새 동이 날 정도였다.
김 보험이사는 강의에서 고혈압, 당뇨가 동시에 있는 환자는 당뇨를 주상병으로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등의 자신의 상병명 기재 팁을 소개하기도 했다.
당뇨병 환자진료비가 23% 더 높기 때문에 똑같이 처방해도 약품비 고가도 지표 및 총약품비 절감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외래처방 인센티브 계산시 이런 환자가 100명이라면 6개월에 총 370만원의 약품비 절감으로 외래처방 인센티브 금액을 130만원 받을 수 있다고도 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김 보험이사는 "월 수백만원 이상 삭감당하는 의사도 봤다. 기본적인 청구 방법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그간 많은 삭감 관련 문의를 받았고 이를 요약해서 강의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며 강의 배경을 설명했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많은 참석자들은 발표자를 따로 찾아와 삭감 관련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열정을 보였다.
하지만 열띤 강의 열기에도 뒷맛은 씁쓸했다.
최신지견보다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삭감 0원' 강의에 회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는 한국 의료계의 현실 때문이다.
강의를 들은 한 개원의는 "학회 프로그램 중 가장 재밌게 들은 강의였다. 하지만 이런 것에 열광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꽤나 안타깝다"고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다른 개원의도 강의는 알찼다고 평가하면서도 "소신 진료보다는 삭감 피하기에 집중하는 내 자신이 초라해질 때가 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의사회 관계자는 "회원들의 학회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가장 이목을 끌만한 세션을 마지막 순서에 넣을 수 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의학적 소견보다는 삭감 피하기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는 한국 의료계의 현주소를 되짚어보게 한 학회 마지막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