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백범기념관 대강당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의료분쟁조정법과 의료법학회의가 공동 주최한 학술대회였다.
의사 출신의 좌장을 맡은 이윤성 교수를 포함해서 몇몇 병원장들이 참석하였지만, 전체 300명의 숫자를 고려할 때 의사들은 극소수만 참석하였다.
끝까지 자리에 앉아 참여하면서 사실상 정부 측에서 의료분쟁조정법을 개정해 보려는 학술대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 회원들에게 이 사실을 보고할 필요성을 느꼈다.
필자는 의료법학회이사의 자격으로 공정성을 가지고 중립적인 자세에서 학술대회를 즐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갑론을박의 상황들과 서로가 전혀 다른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마이크를 잡고 토론을 중재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대신 글을 쓰기로 생각했다.
예상했던 것과 같이 많은 신문기자, 방송기자가 현장에 있었고, 다음날 4월 26일자 조간신문에는 기념 학술대회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실렸다.
이에 대해 이 많은 언론인을 부른 것이 어떤 정치적 행동을 위한 숨은 의도가 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실제로 국회의원과 정치인, 장관 등 복지부 관료 출신이 대거 참석하였다. 독자들도 어떤 정치적 행동을 할 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앞으로의 추이에 대해서 지켜보기 바란다.
의사회원들의 바쁜 업무로 위 현장에 가보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이 글에서는 그 현장의 분위기와 의료분쟁 조정원의 1년 농사결과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논하고자 한다.
의료분쟁조정법의 핵심은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설립이다.
그동안 소비자보호원의 의료전담부와 각 법원, 검찰의 의료사건 조정부 등에서 했던 업무를 의료사고 사건에 대해 한 곳에서 통일한다는 의미로 또는 의료사고 피해자 구제라는 명목으로 많은 재원을 투여해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설립한 것이다.
1년간 중재원의 실적은 대체로 훌륭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효율성이 저조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소비자보호원은 몇몇 직원으로 많은 사건을 해결했지만, 중재원은 많은 감정위원, 조정위원, 일반상담직원과 조사 직원의 개입으로, 많은 투자 대비 적은 사건을 해결하였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사건의 전문성과 공정성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훌륭하였다. 조정성공률 또한 80% 이상으로 나와 높은 신뢰도를 가졌다. 하지만 조정 참여율은 40% 이하로 저조하였다.
의사들의 조정참여율이 적어 고비용 저효율이 발생하였다고 보고, 시민단체와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해서 강제적으로 조정에 참여를 하게하는 제도를 만들고자 한다는 메시지를 복지부 정책과장은 제시하였다.
강제적으로 의사들을 조정에 참여하게 하는 제도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는 헌법 제 27조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에 접촉될 소지가 있어, 의협 대표로 토론에 참여한 이사는 헌법소원을 준비하겠다고 하였다.
문의원도 참여 강제조항을 개정하여 중재원 이용률을 높인다는 것은 의료계의 반발과 관계악화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강제적인 조정참여를 위한 법 개정은, 곧 발의 되고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법 개정의 수혜자가 누구인지를 면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민인지 의사인지 아니면 국회의원 또는 정부 관료인지 말이다. 법 개정에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둘 다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려고 국민의 눈치를 보고 있지만,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마음인지 의구심이 생긴다.
법조인의 숫자가 너무 적어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법에 호소하지 못했던 옛날과 달리 법조인이 충분한 지금은, 국민 스스로 다양한 형태의 무료 법률상담, 소비자보호원 및 각종 시민단체 상담 등을 통해 국민의 권리를 주장한다.
의료 전담 판사, 검사와 변호사도 많이 배출되어 활동 중이고 더 이상 이들 숫자의 부족이 국민권리의 행사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보다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상담조차 여의치 않는 국민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들 중 의료 혜택을 받은 후에도 물론 예상치 못한 나쁜 결과가 있을 수 있지만, 소송 등 법적 조치를 취하기 힘든 경제적 곤란자가 이번 법 개정을 통해 실질적인 혜택을 받는 수혜자가 될 수 있어야 하며,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조직을 부풀리는 법 개정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불우이웃을 돕겠다고 걷은 100억 중 조직운영비로 50억을 쓰게 되는 사태는 막아야 할 것이다. 모금하는 조직이 거대하다 보니, 이 의료분쟁조정법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었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일자리를 정부관료 의사 변호사 등의 법조인 그리고 시민단체 대표가 차지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실질적인 혜택을 받는 쪽이 이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법을 개정을 하는 국회의원, 정부관료 그리고 그에 관여하는 시민단체, 의사협회 모두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기적 집단의식을 버리고 어려운 자에게 순수하고 진심어린 마음을 보이는 그러한 법 개정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