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A원장(37)은 공동개원을 하면서 간호직원 5명을 고용했다. 그동안 쌓아온 술기를 썩히기 아까워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간호인력이 많이 필요했다.
하지만 6월에 접어들면서 계속 늘어날 것만 같았던 환자가 급감하기 시작했고, 여름이 지나 환절기가 돌아와도 회복할 기미가 안보였다. 수술건수도 기대에 못미쳤고, 환자가 없으니 직원들은 안내 데스크에서 휴대폰 게임을 하기 일쑤였다.
여름 비수기가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던 A원장은 인건비 부담이 커지자 11월 초, 결국 직원 중 한명에게 퇴직을 제안했다. 해당 직원은 처음엔 수락하는 듯 했지만 다음날 퇴직금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A원장은 노동법을 근거로 근무기간 1년을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급할 수 없다고 하자, 직원은 개원 초 업무량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했는데 너무한 게 아니냐며 불만을 제기했다.
급기야 그 직원은 공휴일 근무부터 초과근무에 따른 수당 미지급 등에 대해 노동부에 민원을 제기했고, 결국 A원장은 퇴직금 보다 많은 금액을 지급하게 됐다.
여기까지가 이영훈 씨(34·가명)가 선배 개원의에게 전해 들은 얘기다.
'포괄임금제'가 왜 위험할까
포괄임금제란, 야간, 연장, 휴일 수당을 포함한 월 급여를 정하는 방식으로 근로기준법상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근로계약할 때 기본 임금에 야간, 연장, 휴일 수당은 미리 합산해 월 급여를 결정해야하는데 포괄임금제는 계약서에 월 급여만 제시하다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최저임금제에 못미치는 경우가 많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월 140만원을 지급하는 경우, 개원의는 최저임금제는 충분히 넘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근무시간에 따른 연장, 야간, 휴일근로에 따른 수당을 추가하다보면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경우가 꽤 있다.
따라서 월 급여만 기재하지 말고, 근로시간 이외 연장, 야간, 휴일근로에 따른 수당을 사전에 계산해 월 급여를 정하고 시간당 시급을 기재할 필요가 있다. 또 필요에 따라 야간당직이나 휴일당직 근무가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을 명시하는 게 좋다.
개원하는 순간부터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의 모습과 함께 '경영전문가'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선배들의 당부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최근 어렵사리 직원을 채용한 그는 직원관리 및 노무에 대해 자문을 구하자 선배 개원의는 A원장의 사례를 들어 노무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A원장의 첫번째 실수는 1년 앞을 예측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직원을 채용한 것이고, 두번째는 사전에 근로계약서를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것이다.
선배 개원의는 근무시간 및 초과근무에 따른 수당 지급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논란의 여지를 없애려면 근로계약서를 잘 작성해뒀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직원들과의 관계를 잘 다져놓지 못한 것이다. 평소 직원들과의 신뢰관계가 괜찮았더라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A원장은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직원 입장에선 신규 개원이라 다른 곳보다 할일도 많고, 병원이 자리 잡을 때까지 함께 희생을 감수한 측면이 있는데 법대로 하자니 직원도 감정이 상해 자신의 권리를 내세운 것일 수 있다."
선배 개원의는 요즘 직원들이 고용노동부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의사 입장이 아닌 직원 입장에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그는 아직까지 상당수의 개원의들이 근로계약서나 초과근무 수당에 대해 개념이 없어서 직원이 법대로 따지고 들었을 경우 이를 피해갈 수 있는 개원의가 많지 않다고 했다.
당장 계약서 작성을 앞두고 있는 개원 예정의 이영훈 씨는 생소한 노동법 얘기에 덜컥 겁이 났다.
이씨는 일단 선배가 준 근로계약서 견본을 챙기고, 수첩을 꺼내 선배 개원의에게 근로계약서 작성부터 직원관리에 대해 물었다.
선배 개원의는 "A원장의 병원은 '5인 이상 사업장'으로 연장, 야간, 휴일 근무에 대해 임금의 50%의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기준 때문에 문제가 더 컸다"면서 "직원이 4인 이하의 경우에는 영세사업장으로 이에 해당하지 않아 다행이지만 시급 4860원(2013년 기준) 최저임금제 등 기본적인 근로기준법은 지키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임금 이외에도 갈등의 요인은 많다"면서 "특히 신규 개원의 경우 직원들의 업무량이 많다는 것을 감안해 평소 직원들에게 인간적으로 대하고 늘 감사를 표하는 게 추후에 노무 갈등을 막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이비인후과개원의사회 안재신 전 법제이사가 말하는 근로계약서 작성 TIP
1>원장-직원간 갈등은 채용할 때의 구두상 한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귀찮다는 이유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데 아무리 소규모라도 문서화해야한다.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 계약서 작성 경험이 있는 선배 개원의나 노무사, 지역 의사회 및 개원의협의회에 자문을 구할 것을 권한다.
2>근로계약할 때 '포괄임금제'를 조심해라. 상당수 개원의가 월 급여 150만원만 정하기 일쑤다. 이는 추후에 법적인 문제의 소지가 많다. 개원의는 월 150만원씩 임급을 꼬박꼬박 지급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여기에는 공휴일 진료 혹은 진료시간 외 근무 등 초과 근무 수당은 포함돼 있지 않아 노동쟁의가 발생하면 불이익을 받기 십상이다.
3>통상적으로 임금을 책정할 때 개원의들은 '진료시간=근무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진료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라면 근무시간도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근무시간은 직원들이 출근해 진료 준비를 하는 시간부터 점심시간, 진료 후 정리 및 청소 시간까지 포함된다. 계약서에 이를 고려해 근로시간을 작성해야한다.
4>직원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해라. 의료분쟁도 마찬가지겠지만 노무 갈등도 평소 직원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직원을 가족처럼 대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던 개원의는 같은 상황에서도 문제가 생기지 않거나 갈등이 발생했다가도 쉽게 해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