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독점 공급을 목적으로 병원에 거래보증금 수억원을 지급한 제약사가 이 돈을 고스란히 날릴 위기에 놓였다.
법원이 의약품 독점 공급을 목적으로 병원에 지급한 거래보증금은 그 자체가 리베이트에 해당하므로 돌려받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 11부는 최근 A제약사가 의약품 납품을 위한 거래보증금을 돌려달라며 병원을 대상으로 제기한 보증금반환 청구를 기각했다.
제약사와 병원간 맺은 계약 자체가 약사법과 의료법에서 금지한 리베이트이므로 이를 반환할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판결의 골자다.
10일 판결문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A제약사가 개원을 앞둔 B의료재단과 의약품 공급 계약을 맺으면서 시작됐다.
A제약사는 B의료재단에 30억원 가량의 의약품을 공급하기로 약정한뒤 이에 대한 거래보증금으로 개원전 3억원, 개원후 3억원 등 총 6억원을 지급하기로 약속하고 우선 3억원을 입금했다.
그러나 B의료재단은 개원 준비과정에서 과도한 부채가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개원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A제약사는 이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미 많은 부채가 쌓여있던 B의료재단은 3억원 중 5천만원 밖에 반환하지 못했고 결국 A제약사가 이를 돌려달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 3억원의 거래보증금은 결국 제약사가 병원에 의약품을 독점적으로 공급할 권리를 대가로 지급된 것"이라며 "또한 6억원의 보증금은 납품 규모(30억원)의 20%에 달한다는 점에서 리베이트로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이 보증금은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민법 103조에 따라 불법원인급여"라며 "2억 5천만원의 보증금은 민법 746조에 따라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제약사는 이 금액이 부정한 청탁과 연관됐다는 증거가 없고 특정 의약품 처방을 약속한 것이 아니므로 리베이트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를 어겼다고 판단하는데 꼭 부정한 청탁이 결부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또한 여러 가지 의약품을 독점 공급하는 것이 특정한 의약품 처방을 약속하는 리베이트보다 덜 나쁘다고 볼 수도 없다"고 못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