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제가 해외에 거주하는데 잠시 한국에 들어온 김에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고싶어서요. 무슨 과로 가면 될까요. 그리고 시간이 별로 없는데 수술일정은 금방 잡힐까요"
교수 "아, 하지정맥류는 OO과에 OOO교수를 찾아가면 되실 겁니다. 저도 이 교수한테 수술받고 잘 지내고 있거든요. 시간이 없으시다고 하니 수술일정을 빨리 잡을 수 있는지 확인해 드리죠"
환자 "네? 수술 일정을 지금 바로 확인해 해주신다고요?"
교수 "네, 잠시만요. 해당 교수가 오늘 외래진료가 있는지부터 확인해 드리죠"
4일 오전 9시 반, 강북삼성병원 본관 로비. 병원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의료진 상담'이라고 적힌 창구에선 의료상담이 한창이다.
강북삼성병원은 한달 전부터 12명의 원로 교수들이 돌아가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에 한두시간 짬을 내어 의료상담을 시작했다.
이날 의료진 상담을 맡은 교수는 영상의학과 과장을 맡고 있는 정은철 교수. 그는 이날 오전 9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본관 로비 통합창구에서 의료상담을 진행했다.
한시간 동안 정 교수를 거쳐간 환자는 10명 정도. 그 중 4~5명은 5분 이상 꽤 긴 의료상담을 받았고 일부는 "내과가 어디에요?" "예약하고 왔는데 어디로 가야하나요?" 등 간단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딸과 함께 병원을 내원한 환자는 자신의 하지정맥류 수술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자 곧 이어 딸 엉덩이에 종기가 났는데 외과로 가야할지, 피부과로 가야할지 물었다.
또 60대 할아버지는 어젯밤 부인이 당뇨로 응급실에 왔는데 식단표를 구할 수 없느냐며 상담을 해왔고, 60대 노부부는 진료 의뢰서를 들고 찾아와 어느 과로 가야할 지 물었다.
의료상담은 내과부터 정형, 재활, 피부과 등 다양했지만 정 교수는 환자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답을 해줬다.
특히 그는 의료상담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경우 해당 진료과에 전화를 걸어 환자가 불편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 때마다 어두운 얼굴로 상담창구에 들렀던 환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일부 환자들은 자리를 뜨면서 "의사 선생님이 앞에 계시니깐 너무 좋다"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앞서 정 교수가 의료상담을 시작한 첫날, 다짜고짜 화를 내며 상담창구를 찾아온 환자도 있었다.
진료예약을 하고 왔는데 대기시간이 길다는 것이었다. 정 교수는 해당 진료과에 전화를 걸어 바로 문제를 해결해줬다.
"해당 진료과에 확인해 보니 진료의뢰에 오류가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상황을 설명했더니 문제가 풀렸지요. 사실 일반 직원이 말했으면 바로 해결 안됐을 수도 있지요. 스텝이 직접 부탁을 하니까 쉽게 해결된 것도 있을 거라고 봐요. 그런 점에서 상담을 확대하면 환자 민원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한번은 오전 외래접수가 끝난 후에 병원에 도착한 환자가 있었다. 그는 직장인이라 내원이 쉽지 않아 당일 진료를 받고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물었다.
정 교수는 해당 진료과 교수에게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진료를 받고 갈 수 있도록 해줬다.
의료상담을 받은 환자 입장에서 정 교수는 안되는 게 없는 '만능해결사'이자 '든든한 백'이었다.
의료상담창구를 처음 제안한 것은 장충현 교수(성형외과)였다. 그는 신호철 병원장에게 은퇴 이후 의료상담창구를 만들어 '의료설계사' 역할을 하겠다고 제안했고, 신 원장은 이를 바로 추진한 것.
장충현 교수는 "대개 젊은 여성들이 안내를 하고 있지만 사실 환자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의료진이 직접 환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제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실 은퇴 이후 재능기부 차원에서 환자들에게 '의료설계사'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이디어를 냈는데 생각보다 참여하겠다는 교수들이 많아 고마울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의료상담에는 신호철 병원장과 함께 장충현, 장운하, 안동애, 최원식, 권칠훈, 박해원, 정은철, 손진희, 박효순, 손정일 교수 등 1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