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보는 것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제도, 급여 청구 업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직원들이 청구를 어떻게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급여조사실 조사2부 엄성환 차장은 15~16년 동안 현지조사 업무를 담당해오면서 허위 부당 청구를 한 요양기관을 접하고, 느꼈던 점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거짓 청구가 이뤄지고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는 원장들이 상당수라는 것이다. 현지조사를 나가면 그제서야 몰랐다며 억울하다고 항변해봐도 소용 없다.
엄 차장은 "의외로 허위, 부당 청구를 몰랐다고 하는 원장들이 많아 안타깝다. 직원들이 잘못 청구해 놓고 악의를 품고 내부고발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A원장은 직원 B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직원을 뽑는다고 퇴사를 권고했다. B는 의원의 급여 청구 업무 등 보험에 관한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B는 원장에게 앙심을 품고 내부고발했다.
엄 차장은 현지조사 업무 중 '설득' 과정이 가장 어렵다고 털어놨다. 예고없이 갑자기 찾아가기 때문이다.
그는 "현지조사라는 것이 허위, 부당청구 개연성이 높은 병의원의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자료 조작 가능성이 있어 사전에 알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원급 현지조사는 심평원 현지조사 직원 4명이 한팀을 이뤄서 진행한다. 2주 출장, 2주 내근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각 팀은 의원 한 곳당 6개월치 진료기록 등 각종 자료를 조사해야 한다. 주어지는 시간은 3일. 3일안에 설득, 자료요청 및 분석, 부당내역 확인, 현장에서 확인 소명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3일 일정이 끝나면 또 다른 의원으로 이동한다. 엄 차장은 출장 기간 동안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모두 순회하기도 했다.
엄 차장은 "전산 자료는 진료시간을 피해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에 다운 받아서 분석해야 한다. 이틀 동안 밤을 새서 조사하는 일이 허다하다. 현장에서의 압박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환자 앞세우고, 인맥 과시하며, 자해까지…"
현지조사 대상자로 선정된 의원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환자를 앞세우는가 하면 인맥을 과시하며 강하게 나오기도 한다. 부당청구 내역이 확인되면 자해까지 한다고 했다.
엄 차장은 "나환자 집성촌을 관리하던 한 의원은 허위청구 조사대상이 되자 인상이 험악한 나환자를 앞세우기도 했다. 유력인사이기도 한 어떤 의사는 법장관실에 전화한다고 되려 큰소리 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거짓청구가 적발되면 자신의 손을 도끼로 자르겠다며 당당하게 맞서다가도 막상 혐의가 적발되자 자책의 의미로 벽에 머리를 박으며 자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현지조사 팀원 4명이 검은색 옷을 입고 가면 저승사자가 온 것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만큼 모두가 꺼리는 상황에서도 현지조사가 건강보험 지킴이 최종 보루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는 원장이 아니고 관리자, CEO다. 직원관리에 신경쓰고 급여청구시스템에 대해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