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가 원격진료 허용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의료계 내부에서 뚜렷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개원가에선 강력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병원급 특히 대형병원들은 내심 반기고 있어 향후 정부가 원격진료를 강행할 경우 종별간 갈등으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원격진료 막으려는 개원가, 내심 반기는 병원계
개원가에선 '원격진료 허용=1차의료기관 붕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지금은 동네의원을 내원해 진료받지만 원격진료가 도입되면 간단한 질환까지 원격으로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기 시작하면 개원가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
그렇지 않아도 대형병원이 외래진료 비중을 높이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격진료를 막는 것은 개원가의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경기도 한 개원의는 "원격진료를 허용해 1차의료기관이 붕괴되면 그에 따른 파장은 더 클 수 있다"면서 "수 년전부터 논의에 그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사협회 노환규 회장도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원격진료 도입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입장을 표명하며 1차 의료기관의 존립 기반의 붕괴와 함께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병원계는 원격진료를 또 한번의 기회로 바라보고 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야할 길이라는 게 병원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서울대병원 오병희 병원장은 얼마 전 실시한 기자간담회에서 "원격진료는 가야할 길이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에 몰리는 만성질환자들의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원격진료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당시 그는 "일단 일부 가능한 환자군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오 병원장은 또 최근 예방 및 관리가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원격진료를 잘 활용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의료 IT시스템이 잘 구축된 분당서울대병원 한 관계자는 "원격진료는 벽오지에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의 주민들에게 큰 혜택이 될 수 있다"면서 "단계적으로 시행해볼 만 하다"고 말했다.
대한의료정보학회 김주한 이사장은 "대형병원을 찾는 만성질환자에 대해서는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고 했다.
진단명을 바꾸지 않고 처방전도 그대로인 환자에 대해서는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국 외래진료는 연 7억건에 달하는데 환자 한명이 병원을 내원해 진료를 받는 교통비와 시간비용을 따지면 평균 2만원이 소요된다. 즉, 연 14조원의 사회적 비용이 드는 셈"이라면서 "원격진료를 허용하면 이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민은 뒷전"
한편, 원격진료가 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논란의 핵심은 원격진료가 환자에게 어떤 혜택이 있는지 혹은 부작용이 있는지가 돼야하는데 현재 의료전달체계 붕괴 등 종별간 갈등에 초점이 맞춰지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모 대학병원 교수는 "지금 의료계는 원격의료의 찬반에 대해서만 얘기할 뿐 환자 진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는 없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그는 이어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는 만큼 국민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게 전문가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