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응급실 당직전문의 제도, 일명 응당법 시행으로 홍역을 치렀던 응급의학과가 이번엔 서울시의회 조례안에 발끈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의회는 구급차량 이송환자를 병원이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서울시 응급의료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앞으로 공포 후 시행만 남은 상태다.
조례안을 대표발의한 정승우 서울시의원은 "구급차량 이송환자를 병원이 거부하는 사례가 매년 늘어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놓치고 있다"면서 "정당한 사유가 없이 환자를 거부할 수 없도록 조례안을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정 의원은 조례안을 통해 구급차로 이송된 응급환자를 정당한 사유없이 기피하거나 거부할 경우 복지부에 행정처분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반대로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환자를 거부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정당한 사유'의 기준이 모호해 논란이 클 것이라는 게 의료진들의 우려다.
응급의학회는 "제2의 응당법"이라고 발끈하고 있다.
병원의 여건은 상관없이 무조건 환자를 받으라는 식이 응당법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응급의학과 의료진들은 상위법인 의료법과 응급의료법을 무시한 조례안이 시의회를 통과했다며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응급의학회 유인술 이사장은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구급차로 환자를 이송할 때 해당 병원에 연락해 환자 수용 능력을 파악하는 게 의무인데 이를 무시한 조례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응급환자 이송 전에 병원의 여건을 파악하는 것에 대해선 벌칙조항이 없다보니 99%의 구급차가 이를 지키고 있지 않은 실정"이라면서 "이 상태에서 조례안까지 통과됐으니 응급실은 더 난장판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정당한 이유없이 응급환자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이미 의료법에서도 규제하고 있는 내용인데 왜 이같이 조례안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응급의학회는 특히 서울시의회가 일사천리로 조례안을 공포, 시행하면 전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유 이사장은 "이는 전국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라면서 "응급실은 자리가 비어 있어도 응급환자를 수술 중이거나 응급환자에 필요한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가 없으면 환자를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인데 무조건 받으라는 식은 곤란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대병원 조석주 교수(응급의학과) 또한 "세계 어느 국가도 응급환자를 이송할 때 병원의 여건을 확인하지 않는 곳은 없다"면서 "해당 병원의 환자 수용능력도 묻지 않고 막무가내식으로 환자를 밀어넣는 것은 한국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근본적인 문제는 응급환자 이송체계에 있는데 모든 책임을 병원과 의사에게 떠넘기려는 것"이라면서 "환자 이송 전에 어떤 병원이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지, 해당 환자에게 적절한 병원이 어디인지 확인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또 병원이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정당한 요건이 애매하기 때문에 이를 두고 구급대원과 병원간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응급의학과 의료진은 "말도 안되는 조례안"이라면서 "구급대원들은 법적인 의무를 무시한 채 무조건 응급환자를 밀어넣어도 되고, 의사들은 하위법인 시의회 조례안을 어겼다는 이유로 행정처분을 받는다면 누가 응급실을 지키겠느냐"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