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현행 의사만 처방할 수 있도록 규정한 천연물신약 고시가 위법하다며 한의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한편 법원은 이같은 판결이 한의사의 독점적인 천연물신약의 처방과 사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9일 서울행정법원은 천연물신약 고시 무효 소송에 대해 "천연물신약의 범위에서 한약제제를 제외한 이유나 과학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면서 고시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한의사들과 식약처는 2012년부터 2013년 말까지 6차 공개 변론을 진행할 정도로 천연물신약 고시와 관련해 팽팽히 맞서왔다.
한의사들은 "레일라정 등의 천연물신약은 명백한 한약의 원리와 성분을 도용했다"면서 "천연물신약이라는 명목으로 의사들에게만 처방권을 허용한 의약품 품목 허가 고시는 무효"라고 주장해 왔다.
한약 성분의 한약제제를 천연물신약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의사만이 처방할 수 있도록 생약제제의 범주로 규정해 한의사의 권리를 박탈했다는 것.
이에 행정법원 문성호 공보판사는 "식약처 고시는 한약제제도 천연물신약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가 이후 한약제제를 제외했다"면서 "그 제외의 이유나 특별한 과학적 근거를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정책적인 이유 제시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생약제제는 '서양의학적 입장에서 본 천연물제제로서 한의학적 치료목적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제제를 말한다'로 규정돼 있다"면서 "이는 한약과 생약의 성질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개념을 정의한 것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결국 식약처가 천연물신약을 자의적으로 생약제제의 범주에 포함시킨 것은 한의사의 의약품 개발과 처방을 제한하기 때문에 한의사의 면허범위와 직업 수행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
재판부는 "생약을 추출해 새로운 의약품을 제조하는 방법이 한방이나 서양의학 중 어디서 기원했는지 확인할 과학적 근거도 없다"면서 "천연물 성분을 연구, 개발해 새로운 의약품을 만드는 이상 한약제제 역시 천연물신약에 포함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재판부는 한의사들의 천연물신약의 배타적인 처방과 사용 주장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천연물 성분의 규격을 달리해 새로운 의약품을 제조하는 방법이 고유한 한방원리로 단정할 수 없다"면서 "원고들 주장처럼 한의사의 면허 범위에 천연물신약의 배타적 사용, 처방권이 당연히 포함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한의사들도 천연물신약의 개발과 처방, 사용이 가능하도록 고시가 개정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