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의 조치에 따른 레지던트, 전공의를 지도감독할 지위에 있지 않은 펠로우에게 의료과실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은 2007년 당시 서울의 모 수련병원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1년차였던 A씨, 같은 과 레지던트 2년차였던 B씨, 전임의였던 C씨의 업무상 과실치사 사건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2007년 4월 이 수련병원은 제왕절개 수술로 쌍둥이를 출산했다.
하지만 이들 중 선둥이는 병원내 감염으로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당시 당직의사였던 A씨는 오후 4시 47분경 선둥이가 복부팽만과 발열증상을 보이고, 같은날 오후 8시 32분경 앓는 소리를 내면서 복부팽만이 지속되며, 오후 11시 30분에는 무호흡, 청색증 등의 전형적인 패혈증이 의심된다는 보고를 간호사로부터 받았다.
이에 대해 검찰은 A씨가 간호사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약 2시간 30분이 경과는 뒤에야 피해자 상태를 확인했고, B씨와 C씨에게 당직보고를 할 때까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선둥이를 자극해 울리거나 앰부배깅만 시행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A씨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업무상 과실로 인해 결국 신생아의 패혈증을 악화시켰다며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B씨, C씨에 대해서도 A씨와 같은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당직의사인 A씨로부터 신생아가 패혈증 증상을 보인다는 보고를 받고, 혈액검사를 한 결과 CRP수치가 상승함에 따라 조기에 경험적 항생제를 투여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지만 뒤늦게 반코마이신을 투여했다는 것이다.
해당 신생아는 패혈증으로 혈관내 응고장애, 뇌출혈 및 뇌수막염으로 결국 사망했다.
반면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A씨와 관련 "진료기록 작성이 전산화되지 않은 병원에서 의사 지시나 진찰사실이 누락되는 사례가 흔히 발생하고, 환자에게 나타난 무호흡의 횟수와 간격에 비춰볼 때 진찰이 지연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법원은 "A씨가 환자를 직접 진찰한 다음 당직팀의 다른 레지던트와 함께 피해자가 패혈증이 아니라 일시적 현상이라고 판단하고, 혈액검사 등을 즉시 시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과실을 단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레지던트 2년차였던 주치의 B씨에 대해서도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B씨는 CRP 검사후 세균성 감염을 의심해 광범위 항생제 치료를 시작했는데, 이 때 처방한 유나신 등은 그동안 항생제를 쓰지 않았던 소아환자의 패혈증 치료에 쓰이는 1차 약제여서 적절한 조치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반코마이신은 소위 죽음의 세균(MRSA)에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항생제로, 일반적으로 감염내과의 사전 사용허가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약제 선택과 투여 시점과 관련해 반코마이신을 조기에 처방하지 않은 것을 과실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법원은 "B씨는 수련체계에 따라 지도교수와 함께 회진하면서 피해자 상태를 진단했고, '검사를 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자'는 교수의 말에 따라 혈액검사를 지시하고, 환자 상태를 관찰한 후 이를 지도교수에게 보고해 지시받은 대로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교수의 지도에 따라 일련의 조치를 한 것은 현대 임상 소아과학에서 인정하는 것과 배치되지 않아 B씨가 지도교수의 조치와 처방을 신뢰한 것을 두고 과실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법원은 펠로우 C씨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진료수련시스템 상 환자가 입원하면 세부 전문과목의 교수가 환자에 대한 책임을 맡고, 레지던트들이 환자를 다시 배정받아 교수의 지시사항을 이행하고 결과를 보고한다.
전임의는 세부 전문과목 교수가 맡지 않는 경증 환자 인수, 교수 회진 동행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법원은 "C씨의 경우 피해자를 직접 진단하고 투약지시를 하거나 주치의였던 B씨를 감독할 위치에 있지 않아 반코마이신 조기투여를 지시하거나 감독할 수 없어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