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에 참여한 교수 10명 중 7명은 만점. 나머지 3명도 90점 이상. 지난해 한 의과대학에서 실시한 강의 평가의 결과다.
이 정도 성적표라면 이 의대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명문 의과대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학생들 대부분이 교수들의 강의가 완벽에 가깝다고 평가한 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국의 대부분 의과대학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가히 우리나라 의대 교수들은 완벽한 스승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놀라운 성과에 대해 사회적인 시선은 냉랭하다. 특히 의대생들도, 교수들도 대수롭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이해 못할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최근 한 의대가 자체 조사한 강의 평가에 대한 설문이 이에 대한 궁금증을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조사에 참여한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이 강의 평가가 실질적인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한 것이다. 특히 10명 중 4명은 불이익이 두려워 강의 평가를 좋게 쓰고 있다고 응답했다.
결국 아무리 지적해봐야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 평가를 작성할 필요성을 못느끼는데다 굳이 써야 한다면 괜히 혹평을 해서 찍히느니 만점을 주고 마는 셈이다.
실제로 본지가 일부 의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60%의 학생들이 신경쓰기 귀찮아서 100점을 주고 만다는 답변도 나왔다. 이쯤 되면 평가 항목을 읽어보기는 하는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는 우리나라 의사 사회의 폐쇄성과 무관하지 않다.
입학과 동시에 6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아가 인턴, 레지던트 코스를 밟을때까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부분의 예비 전문의들은 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더욱이 전임 강사를 거쳐 교수 트랙을 밟게 된다면 15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 선배는 영원하다는 인식이 생기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환경에 갇혀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신을 가지고 선배, 혹은 스승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의대 강의평가가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익명성을 보장하고 있으니 평가는 공정하다는 의대의 답변은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그러한 의지라면 차라리 학생들에게 부담만 주는 평가를 없애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강의에 질을 높이고 싶다면 이제라도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꼭 점수를 매기지 않아도 학생들의 의견을 담을 수 있는 방법들은 수없이 많다. 굳이 찾지 않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