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신언항 원장이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급성호흡기감염증 전산심사(감기전산심사)를 예정대로 8월1일 청구분부터 적용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감기 전산심사가 의료계의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감기 전산심사가 시행되면 내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일반과 등 환자의 대부분이 감기환자인 진료과가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그렇지 않아도 환자가 30% 이상 줄어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감기 전산심사가 적용되면 무더기 삭감이 불가피해 자칫 이들 의원의 폐업 도미노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감기 전산심사는 향후 심평원이 마련한 급성호흡기감염증 심사원칙과 연계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의료계의 극한 대립상황이 재현돼 제2의 의료대란을 불러올 수 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는 TF팀 구성, 복지부에 의견서 제출, 심평원 관계자 방문 등 감기 전산심사를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입장이지만, 심평원이 워낙 단호한 입장이어서 전망은 어둡다.
의료계가 감기전산 심사 적용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심사 기준이 진료현장의 가변적인 상황을 전혀 고려치 않고,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데서 찾을 수 있다. 전산심사가 의사의 진료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개협의 주장에 따르면 먼저 의사의 처방 내용을 획일적인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일률적으로 심사하는 일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 진료 명세서중 4회 이상 내원한 건은 모두 정밀심사를 하도록 한 것도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또 ▲호흡기관용제를 상기도질환 2종 이내만 사용토록 제한하고 ▲3세대 세파로스포린계 항생제 사용 및 항생제 중복 투여를 규제하고 ▲우리나라 환자들의 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의료계는 이에 따라 감기 전산심사를 시행하기에 앞서 의료계와 충분한 협의를 거칠 것을 주장하며 대응방법을 모색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반해 심평원은 건강보험 재정안정화를 위해 외래청구건수의 25%(연간 7천990만여건)를 차지하는 감기관련 청구를 줄이려는 노력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신언항 원장이 15일 의협 박효길, 신창록 보험이사와 만난 자리에서 “이번엔 의료계가 양보하라”고 말한 것은 감기 전산심사에 대한 심평원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감기심사기준은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심사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라는 심평원과 의사의 진료권을 침해하고, 1차 의료를 붕괴시킬 것이라는 의협의 입장이 어떻게 절충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