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총성이 사격장에 울려퍼진다. 손에 힘이 풀린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총격음이 귀가에 맴돈다. 메아리가 잠잠해진다. 그제서야 묵직한 45구경 권총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휴- 무사히 끝났다."
그 안도감은 불과 하루를 가지 못했다. 1985년 경북 영천. 육군 사격훈련장에서의 사격훈련이 그의 인생을 바꿀 줄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최근 '난청 줄이기 검사' 제도화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인 이비인후과개원의사회장의 이야기다.
난청 검진 공론화 소식을 들었을 땐 어려운 처지의 의사회가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 나섰다고 생각했다. 개원의사회의 존재 이유는 사실상 회원들의 먹거리 창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최근 경기도에서 김익태 이비인후과개원의사회장을 만났다. 이번 인터뷰는 한마디로 김익태 회장의 고백이자 다짐과도 같다. 그 역시 소음청 난청을 겪은 후부터 이명에 시달리고 있다. 무려 30년간. 다시 1985년으로 돌아가보자.
귀에 이상 신호가 나타난 것은 사격훈련이 끝난 바로 다음 날부터. 기상 나팔 소리가 그전과 달랐다. 기분 탓으로 돌리기엔 왼쪽 귀가 보내는 신호가 둔탁했다. 저음은 뭉개지고 고음은 갈라졌다.
일단 지켜보자는 군의관의 말도 소용없었다. 사격훈련 이후 왼쪽 귀는 제 역할을 못햇다. 한동안 들리지 않는 귀를 부여잡고 본능적으로 사람들의 입술 모양을 눈으로 훑었다. 입술이 움직이는 게 보였지만 소리는 여전히 작고 희미했다.
조금 지나면 나아질 것이란 기대는 제대 후까지 이어졌다.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뀐 것은 전공을 결정하고부터. 이비인후과를 선택하고 나서야 불편의 정체가 '소음성 난청'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사격훈련장의 시설이 열악했어요. 양철 지붕은 소리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고 변변한 귀마개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한번의 권총 사격훈련으로 귀가 만신창이가 됐다고 해도 이상할게 없죠. 이비인후과 전공을 공부하면서 소음성 난청으로 청력을 잃으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증상이 나타난 후 5년간은 신경질이 날 정도로 불편했다는 게 그의 말. 소음성 난청과 이명은 분명 다른 증상이지만, 소음성 난청을 겪은 후부터 이명 증상이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일종의 후유증인 셈.
하루 종일 귀가에 맴도는 "삑-" 소리는 여전히 낯설고 괴롭다. 무슨 수를 써도 안 된다는 걸 알고 포기했다. 그저 운명이거니 생각했다.
포기한 난청과의 싸움에 다시 오기가 발동한 것은 지난해 말.
짧은 머리, 검게 그을린 남성이 의원 문을 두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동계 훈련을 앞둔 박격포 포반장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예상보다 심각했다. 김익태 회장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진단서를 써 줄테니 보직을 바꾸라"고 당부했지만 젊은이의 답변은 단호했다. "포반장이라 제가 훈련에 빠질 수는 없습니다." 아쉬운 순간이었다.
과도한 음악 청취로 소음성 난청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점차 늘고 있다는 점도 난청 문제 공론화를 결심케 한 이유가 됐다.
"걸그룹을 연상케하는 중학교 3학년의 여학생이 찾아왔지만 손 쓸 방도가 없었습니다. 소음성 난청은 일단 발생하면 평생 회복하지 못합니다. 그 아이는 평생 난청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소음성 난청은 예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뿐이죠."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그들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김익태 회장을 사로잡았다. 소음성 난청이 진행되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청력 검사를 받고 주의사항을 들었다면 인생도 바뀔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
김 회장은 "진료를 하면서 난청 문제로 대기업 입사나 부사관, 경찰관 신체검사 기준에서 낙방하는 사례를 종종 봤다"며 "이제 우리 사회가 완전히 못 듣고 못 보는 중증 장애뿐 아니라 난청과 같은 부분 장애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신생아 청각선별검사 외에 영유아 이후 성인까지 청력 검진 프로그램이 전무한 상태. 실제로 2010년 질병관리본부는 초중고 학생의 난청 유병률을 5.4%로 보고했지만 학교 검진으로 나타난 난청 유병률은 0.47%에 그치고 있다. 고막 검진을 포함해 일정 시설을 갖춘 의원급 청력검진 기관이 절실한 이유다.
김익태 회장은 "난청 중 소음성 난청은 유일하게 예방이 가능하다"며 "소음성 난청이 10세부터 눈에 띄게 증가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과 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에 실시하는 의무 청력 검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의 연계나 난청 줄이기 캠페인 등을 구상하고 있다는 김 회장은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먹거리 창출 때문에 난청 검진 사업을 추진하는 게 아닙니다. 이비인후과의사이면서 저 역시 환자이기 때문에 소음성 난청의 괴로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난청은 소통의 단절을 초래해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경제적, 사회적 문제도 유발하는 무서운 질환입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광야에서 혼자 외치고 있지만 언젠가 제 목소리를 들어줄 누군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