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모세포종 재발로 전신마취 하에 후두하 개두술 및 종양 완전 절제술(1차 수술)을 받은 환자 A씨.
수술 후 37시간 만에 A씨는 통증을 호소했다. 의료진은 진통제 케로민을 투여했지만 효과가 없어 마약성 진통제 페치딘까지 투여했다. 그러나 환자 상태는 오히려 더 나빠졌고 진통제 투여 30분 후 심폐소생술까지 실시했다.
의료진이 다시 뇌CT 검사를 했더니 수술 부위 약간 위쪽 양측 후두부에 지연성 급성 경막상출혈, 두피 부종 및 출혈 등이 보였다. A씨는 즉시 응급으로 2차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 후에도 A씨는 회복하지 못하고 2주 만에 뇌사 사망했다.
A씨 유족 측은 ▲1차 수술상 과실 ▲진통제 케로민, 마약성 진통제 페치딘 투여 과실 ▲심폐소생술 할 때까지 경과 관찰 소홀 등을 주장하며 서울 B대학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병원 측에 과실이 있다고 봤지만 인정하는 과실 범위는 달랐다.
1심 재판을 진행한 서울동부지법 제15민사부(재판장 김종문)는 수술상 과실과 마약성 진통제 페치딘 투여 과실을 인정하며 B대학병원이 유족 측에 8억8405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B대학병원 의료진이 1차 수술 과정에서 뇌척수액을 과도하게 제거했거나 수술 시 환자의 고개를 과하게 회전하는 등의 수술상 과실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와 함께 "수술 후 처치 과정에서 페치딘 투약을 자제하고 활력징후 측정, 신경학적 검사를 병행해 적절한 진통제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간호사가 의사에게 A씨의 증상 및 상태 악화에 대한 보고 없이 페치딘을 투여한 과실이 있다"고 밝혔다.
유족 측과 병원 측은 모두 법원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항소했지만 2심을 진행한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재판장 이창형)도 병원의 과실을 인정해 7억1362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1심보다 액수와 책임비율만 줄었지 병원의 책임이 있다는 것은 마찬가지 결론.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수술상 과실은 없지만 마약성 진통제 페치딘 투여 과정과 경과 관찰의 과실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B대학병원 간호사는 페치딘 투약 후 A씨의 통증 검사를 실시한 것 외에는 활력징후를 측정하지 않았다. 페치딘 투약에 따른 호흡곤란 발생 여부 등 A씨의 경과를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씨는 두통과 불편감을 호소한 후 두개내압 항진이 진행돼 뇌압이 상승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페치딘의 투약과 그에 따른 호흡 억제 작용으로 경막 외 출혈이 악화되고, 뇌압 상승 및 급격한 호흡부전이 초래돼 심폐정지까지 이르렀다"며 "의료진의 과실과 A씨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