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의 증가가 유산 상속문제와 맞물려 분쟁을 겪는 가정을 목격하는 개원의의 수필이 눈길을 끌고 있다.
대구시 동구의사회 권윤정 회장(신세계외과의원)은 결초보은의 핵심 정신을 잃은 사회의 안타까움을 최근 대구의사회보에 실었다.
권 회장이 말하는 결초보은의 핵심 정신은 '효자종치명 부종난명(孝子終治命 不從亂命)'. '효자는 정신이 맑을 때 내린 명령을 따르지 정신이 혼란할 때 내린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는 "유산 상속 문제로 분쟁이 생겼을 때 치매 진단으로 예기치 않게 의사들이 연루돼 곤란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평소에는 문제가 아닌데 부모가 사망한 후 유산상속 분쟁이 생기면 자녀들이 의원으로 찾아와 무슨 기준으로 치매 등급 판정을 내렸는지 등을 따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는 지난해부터 실시된 치매특별등급제도 때문에 부각되고 있다. 거동에는 큰 불편이 없지만 인지 기능이 떨어져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경증 치매노인을 대상으로 의사 소견서에 의거해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치매등급판정을 위해서는 간이정신상태검사(MMSE), 치매척도검사(GDS) 등을 하는데 개원의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노인들이 MMSE 검사한 것을 자녀가 알고는 의원으로 와서 그 결과를 달라고 해 의사들을 곤혹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권 회장은 "간단한 MMSE 결과 하나로 자식의 반응이 달라지고, 유산이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의사로서 답답하고 애매하다. 결초보은의 핵심을 안다면 유산으로 싸우지도 않을 것이며 의사에게 MMSE 결과지 내놓으라고 소란을 피우지도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권 회장은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기 싫어 아예 치매 진단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치매 진단 검사를 통해 기억력 감퇴 증상이 있는 노인에게 적절한 약을 처방하고, 증상을 늦춰주기 위한 좋은 취지의 정책이 부당하게 이용되고 있는 씁쓸한 단면"이라며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아전인수격으로 MMSE 검사를 악용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