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불임 부부들에게 공공정자은행이 희망이 될 것인가.
의료계는 아이를 절실히 원하는 부부들을 위해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한 반면 윤리계는 혈연주의 특성을 감안해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이목희 의원 주최로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공정자은행,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연자들은 정자은행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제도화에 대해선 시각차를 보였다.
이날 부산의대 박남철 교수(한국공공정자은행설립추진위원장)는 '정자은행은 의료인 개인이나 병원에 경제적 이익을 주는 사업이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난치성 불임으로 망연자실해 있는 젊은 부부의 눈물과 고뇌를 공유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박남철 교수는 "비배우자 인공수정 문제는 생명윤리학적 측면에서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면서 "공공정자은행 설립을 위해서는 의학과 생명윤리, 법률 전문가 그리고 정부와 국회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목희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08년~2012년)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자료 분석 결과 불임으로 인한 환자가 2008년 16만 2000명에서 2012년 19만 1000명으로 연평균 4.2% 증가했다.
특히 여성(2.5%)보다 남성(11.8%)에서 크게 증가해 남성불임이 출산율 하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어진 토론회에서 법조계와 윤리계의 문제 제기도 만만치 않았다.
김선욱 변호사 "공공정자은행 법제화, 헌법적 결단 필요"
법무법인 '세승' 김선욱 대표 변호사는 "정자 제공자를 아버지로 볼 것인가라는 문제가 중요하다. 로마법에는 혼인관계자만 아버지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공공정자은행 법제화를 위해서는 헌법적, 입법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알권리 차원에서 정자 제공자의 익명성 존중 차원에서 현 진료기록부 보관 기간(10년)을 80년으로 늘리는 후속절차도 필요하다"며 "한명의 정자를 몇 명에게 줄 수 있느냐는 수혜자 제한과 보상관계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생명윤리학회 이인영 회장(홍익대 교수)은 "아기를 갖는 것은 분명히 플러스이나 윤리적인 문제는 다르다"며 "아직도 사회적으로 씨받이, 생식서비스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강하다"고 말했다.
생명윤리학회 “아직도 씨받이 등 부정적 견해 강하다”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하대청 지원팀장은 "OECD 국가는 공공정자은행이 있는데 왜 한국만 없느냐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 있다"며 "정자 기증은 형제간에도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안다. 정자은행을 만든다고 쉽게 결론낼 문제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의료계는 난임 불임 부부 관점에서 전향적인 인식전환을 촉구했다.
고려의대 김제종 교수는 "암 환자의 정자도 보관할 수 있어 문제가 없다. 문제는 무정자증 남성이다. 더 이상 해결할 방법이 없다"면서 "현 입양도 윤리적 문제가 존재한다. 공공정자은행 설립을 통해 윤리적,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주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일병원 최순란 불임클리닉 코디네이터도 "아기를 간절히 원하는 난임 부부가 있다. 지금은 안내할 절차가 없다. 현재 정자 제공은 IRB 등 준비가 안되어 있다"며 "법적 테두리안으로 오면 해당 부부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난임가족연합회 서진호 본부장은 "정자를 기증받았을 때 합법적인 상태와 아닌 것은 다를 것 같다"며 "난임 가족도 권리가 있다. 법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백재승 교수 “불임환자는 철저한 약자, 윤리문제 제기하면 답 없다”
김선욱 변호사는 "공공정자은행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선진국이라면 난임과 불임 부부 등 소수자에 대한 권리 보호도 중요하다. 부부들에게 알아서 하라는 식의 자세는 선진국 문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플로우 발언을 통해 서울의대 비뇨기과 백재승 교수는 "수 십 년간 불임 치료를 하면서 느낀 점은 불임 환자는 철저한 약자라는 것"이라며 "윤리와 법률문제를 들고 나오면 흐지부지 끝난다"고 강조했다.
생명윤리학회 이인영 회장은 "공공정자은행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저출산 해결책이 아닌 취약계층과 힘든 계층의 의료복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자칫 다른 불신을 낳을 수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