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학 교육에 인문학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중요한 것은 인문학 강의가 아닌 의학이 인문학이라는 깨닳음 하나면 족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당장 엄청난 학업량에 지친 의대생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들으라고 강조하는 것 보다는 의사로 사람이고 의학 또한 인문학이라는 마음 하나만 심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대한의학회 정지태 부회장(고려의대)은 최근 대한의학회지에 '인문학? 그거 의과대학에서 배워야 하나'라는 기고문을 내고 인문학에 대한 소견을 전했다.
정 교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매일 숙제하듯 밀려드는 환자와 씨름하며 살아왔다"며 "하지만 어느 순간 아토피 피부염 환자를 보며 갑작스레 혼란이 일기 시작했다"고 운을 띄웠다.
그는 이어 "아토피 피부염 가이드라인에는 가족간의 갈등과 긴장관계를 고려해 치료방법을 정하라는 지침이 나와있다"며 "하지만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적힌 의학서적은 전무하다"고 말했다.
그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한 여성 환자. 아토피 피부염으로 몇몇 병원을 돌다가 그를 찾아온 환자는 진료실에 들어서자 마자 펑펑 울기 시작했다. 정 교수가 당황한 이유다.
정지태 교수는 "여성 환자가 우는 순간 난 의사로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며 "그를 어떻게 위로할 수 있는지 배운 적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최근 의학교육에서 인문학이 강조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인문학 강의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내놨다. 그저 학생들이 의사로서의 삶을, 따뜻한 의사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말이다.
정 교수는 "최근 의대에서 끊임없이 인문학 특강이 열리고 있다"며 "하지만 당연하게 학생들은 들어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렇지만 단순히 인문학이라는 이름이 쓰인 특강 포스터를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 충분한 효과라고 생각한다"며 "언젠가 따뜻한 의사를 고민하게 될때 학창시절 보았던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한 면에서 그는 앞으로 몇십년 뒤에는 그러한 따뜻한 의사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느 순간 분명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시대가 온다는 설명이다.
정지태 교수는 "아마도 20~30년 후의 세상은 의사 활동의 많은 부분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며 "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지금의 의대생들이 인공 지능에 대체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인문학적 소양 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만이 인공지능과 비교되는 의사로 인정받을 것"이라며 "그러한 면에서 의학은 곧 인문학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