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결정권이 있는 성인 환자 대신 보호자에게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하고 동의서까지 받은 병원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재판장 이창형)는 최근 연축성 사경증으로 미세혈관 감압술을 받은 후 사망한 환자의 유족 측이 서울 H대학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1심을 뒤집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손해배상 금액은 2000만원이다.
H대학병원 신경외과 전문의는 환자 김 모 씨에 대해 뇌MRI를 촬영한 결과, 혈관압박에 의한 연축성 사격증 진단을 내리고 미세혈관 감압술을 실시하기로 했다.
의료진은 수술 방법 및 경과, 후유증 및 합병증 등 수술 위험성에 대한 내용을 김 씨의 아버지에게 설명하고 수술 동의서를 받았다.
수술 후 김 씨에게 발열 증상이 이어지자 의료진은 감염 대비, 뇌부종 증상 완화 목적의 항생제를 투여했다. 하지만 발열 증상은 약 한달동안 이어졌고 급기야 전해질 불균형, 강직 간대성 발작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뇌CT 결과 뇌실확장과 뇌척수액이 고인 것이 관찰됐고 흉부 X-레이 검사에서는 급성 성인호흡부전과 폐렴증상이 나타났다. 김 씨는 뇌CT 검사 후 6일만에 결국 사망했다.
유족 측은 ▲수술 과정에서의 과실 ▲투약사고 발생에 따른 과실 ▲수술 후 치료과정에서의 과실 ▲연축성 사경증 치료방법 및 수술 위험성 등에 대한 설명의무 위반 등을 주장하며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들의 주장을 모두 기각했지만 2심 재판부는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김 씨는 병원 내원 6개월 전부터 증상이 악화돼 시급한 치료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라며 "보호자에게 수술의 방법 및 경과 후유증 합병증 같은 수술 위험성 등 전반적 사항에 대해 설명했다"고 유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2심 재판부는 환자가 성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보호자에게 설명한 것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의료진은 수술에 관한 설명 및 동의를 보호자에게만 했다"며 의료진이 설명의무를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어 "성인이었던 환자 김 씨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의사 설명을 듣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태에 있지 않았다거나, 김 씨가 가족에게 의사의 설명 내용을 다시 충실히 전해듣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