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의 의료기기 수요는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에 도달하면 많아지기 시작한다.
소득과 비례해 정부와 국민 모두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때문이다.
2억5000만 명의 세계 4위 인구대국이자 2011년 1인당 국민소득 2920달러·2012년 3420달러(세계은행 기준)의 개발도상국 ‘인도네시아’에 한국 의료기기업체들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더욱이 지난해 전 국민 건강보험 시행으로 앞으로 보험수가 체계가 정착되면 가격경쟁력을 갖춘 한국산 의료기기에 대한 수요는 더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시장 개척은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는 법. 인도네시아 또한 예외가 아니다.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행정절차와 인허가는 물론 빈번한 법 개정과 외국인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한국 업체들의 시장진출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인도네시아 해외의료기기 종합지원센터’(이하 센터)는 한국 업체들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기회는 극대화하고자 2013년 10월 보건복지부 지원을 받아 설립됐다.
최근 잠시 귀국한 원형준 센터장을 만나 인도네시아 의료기기시장의 기회와 위험에 대해 들어보았다.
병원 증가·건강보험 시행 ‘기회’…복잡한 행정절차가 ‘발목’
파견업무 3년차, 원형준 센터장은 어느덧 인도네시아 의료기기시장 전문가로 변신했다.
원 센터장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2014년 1월부터 전 국민 건강보험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도입 초기다보니 현재 의사와 보건성 간 보험수가 문제가 불거진 상태.
주목할 점은 건강보험 도입 전 병원과 병상 수가 급증한 것이다.
2012년과 2013년 2년간 종합병원은 1372곳에서 1725곳으로 26% 증가했고, 병상 수 역시 14만9826개에서 24만5340개로 무려 64% 늘어났다.
전문병원은 349곳에서 503곳으로 44%, 병상 수는 2만830개에서 3만3110개로 59% 각각 증가했다.
그는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2011년 말 1721곳이었던 병원은 2013년 말 2228곳으로 29.5%(507곳) 증가했고, 이 기간 17만656개였던 병상은 2013년 말 27만8450개로 63.2%(10만7794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병원이 급증하는 만큼 의료기기 구매 확대가 예상된다”며 “인도네시아는 전체 의료기기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업체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덧붙여 “향후 보험수가 체계가 잡히면 가격경쟁력을 갖춘 의료기기 판매가 증가할 것”이라며 “이 또한 한국 업체들에게는 호재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원 센터장은 동남아시아 의료기기시장 진출 계획이 있다면 인도네시아를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가 수장국을 맡고 있는 동남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ASEAN)은 향후 유럽공동체(EU)와 같이 ‘무관세 및 인허가 공유’ 등 경제공동체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
즉, 동남아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아세안국가 중 가장 큰 나라인 인도네시아에 우선적으로 수출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의료기기시장 진출 시 대비해야 할 장애물도 적지 않다.
우선 정부가 자국 수입업자(대리점)에게 2년에서 5년간 의료기기 수입유통 독점권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매출 부진 또는 악의적 목적의 계약일 경우에도 현지 대리점 변경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한국 업체와 현지 대리점 간 분쟁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게 원 센터장의 설명.
또 다른 문제는 현지 법인설립 시 복잡한 행정절차와 과다한 기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법인설립, 대표자체류허가, 의료기기수입유통허가, 영업허가, 세관등록, 의료기기 제품등록 등 행정절차를 진행하는데 최소 2년이 걸린다고 밝힌 그는 “2년간 현지 매출 없이 직원을 파견하다보니 2년 이내 인도네시아에서 철수하는 해외업체들이 많다”고 언급했다.
빈번한 법규 개정과 과도한 규제에 따른 철저한 대비책 또한 요구된다.
가령 의료기기 단순조립은 자국생산으로 인정하지 않고 핵심부품의 현지생산만을 자국생산으로 인정해 입찰 시 높은 점수를 부여한다.
또 외국계 회사는 의료기기 직접 판매가 금지돼 무조건 현지 대리점과 판매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 업체는 현지 판매법인 설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수입유통업허가’ 획득…“현지 독점 대리점 역할 수행”
해외의료기기 종합지원센터는 당초 EDCF(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대외경제협력기금)로 인도네시아에 보급된 한국산 의료기기의 A/S 등 사후관리 차원에서 설립됐다.
과거 공적개발원조 방식으로 많은 국산 의료기기가 공급됐지만 정작 고장이 났을 때 부품 조달 등 A/S가 제공되지 않아 불만이 높았기 때문이다.
센터는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국산 의료기기 A/S 창구로서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제조사와 연계해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A/S뿐만 아니라 한국 의료기기업체들의 시장진출과 수출을 지원하는 ‘인큐베이팅’ 역할까지 더해졌다.
원형준 센터장은 “한국산 의료기기에 대한 좋은 인식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현지 독점 대리점들이 유통과정에서 과도한 마진을 붙여 판매하다보니 제품 가격이 비싸져 가격경쟁력 약화가 우려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2월 센터가 의료기기수입유통업 허가를 받으면서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는 한국 업체들의 독점 대리점 역할 수행이 가능해졌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센터는 현지 판매를 위한 제품등록과 각종 행정지원은 물론 독점 대리점으로서 직접 판매와 서브 딜러들과의 공급계약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다.
그는 “현재 4개 제품은 등록을 마쳤고, 7개 제품이 진행 중이며 조만간 2개 제품도 추가등록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해외에 자국 의료기기 A/S 제공을 목적으로 지원센터를 구축한 사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한국이 ‘의료기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마중물로 ‘Made In Korea’ 의료기기 사후관리뿐만 아니라 수출 전초기지로 자리 잡은 인도네시아 해외의료기기 종합지원센터에 자긍심을 갖고 더 큰 관심과 격려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