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경기침체로 대기업이 잇따라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던 당시 병원계에서도 은밀하게 의대교수를 향한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현실로 나타난 의대교수의 구조조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최근 서울대병원이 단행한 K교수의 겸직해제 사례는 이를 준비 중인 대학병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K교수는 왜 겸직해제 대상이 됐나
서울대병원 구조조정의 시작은 이랬다.
대학병원의 경영난이 극심해지기 시작한 지난 2014년부터 서울대병원 오병희 병원장은 진료 및 연구 실적이 부진한 교수에 대한 징계를 고민해왔다.
그리고 고심 끝에 지난 2015년 5월, K교수(흉부외과)에게 겸직해제를 통보했다.
K교수 이외에도 2명의 교수가 함께 거론됐지만 중증도 높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경고처리에 그쳤다.
여기서 마무리됐다면 '서울대병원이 구조조정을 시작하다'로 끝났겠지만,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병원 측의 겸직해제 통보에 수긍할 수 없었던 K교수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병원 처분에 대한 심사를 제기했다.
결론은 K교수의 승.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서울대병원의 겸직해제 처분은 부당하다고 판단, 취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심사숙고 끝에 이를 밀어부쳤던 서울대병원 또한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병원 측이 교원소청 심사 결정을 수용하지 않은 채 겸직해제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자 K교수는 법원에 "겸직해제 처분을 취소하게 해달라"며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번에도 법원은 K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의 판단에 끝까지 버티던 병원도 어쩔 수 없었다. 병원 측은 겸직해제 처분을 취소하는가 하면 그동안 밀렸던 급여는 물론 수당까지 지급했다.
K교수는 지난달부터 본원에서 진료를 시작했으며 내달부터는 기존에 맡아왔던 강남센터 진료에도 복귀할 예정이다.
의대교수를 향한 첫번째 구조조정은 이렇게 실패로 끝났다. 의대교수를에게 "나도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만 심어준 채.
K교수는 정말 '나태한 교수'였나
그렇다면 K교수, 그는 평소 어땠을까. 그는 지난 90년대 중반, 서울대병원 흉부외과의 연구 기능을 강화하고자 타 대학병원에서 연구실적이 우수했던 그를 스카웃해왔다.
실제로 흉부외과 박사학위의 60~70%가 K교수로부터 나왔고, 굵질한 연구과제를 도맡아 진행했다. 그 사이 임상강사였던 그는 조교수를 거쳐 정교수로 임명됐다.
그러던 지난 2008년쯤, 병원 내부에서 "진료분야에도 기여해야하는 게 아니냐"는 압박이 본격화되면서 K교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후 K교수는 본원은 물론 강남센터에서도 진료를 실시했다. 메스를 손에서 놓은 지 오래된 터라 그나마 간단한 하지정맥류 진료를 맡았다.
그의 진료 능력은 생각보다 우수했다. 환자들의 만족도는 높았고, 서울대병원 내에서도 하지정맥류 시술 케이스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진료를 늘리면서 자연스럽게 연구는 위축돼갔다. 그러던 찰나, 병원 측은 그에게 최근 4~5년간의 저조한 연구실적을 문제삼았고 그는 첫번째 겸직해제 대상이 됐다.
그는 뒤늦게 뛰어든 진료에서도 연구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모호한 상태였다.
'진료 및 연구 실적도 없이 자리만 지키는 교수'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의대 동료 교수들 사이에서도 신임을 받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성과 없이 교수들 신임만 잃은 '겸직해제'
K교수는 교원소청과 법원에 서울대병원 교수로서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고, 인정을 받았다.
이를 두고 서울대병원 한 의대교수는 "사실 일부 나태한 의대교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수년 전부터 있었다. 이번 집행부가 칼을 빼들긴 했는데 평가 잣대도 방법도 잘못된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어떤 교수가 20여년 몸 담았던 병원에서 겸직해제 처분에 순순히 수긍하겠나. 누구나 인정할 만한 '기준'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서울대병원은 '구조조정'에는 실패하고 내부 분위기만 어수선해졌다.
서울대병원 한 시니어 교수는 "겸직해제 소식을 듣고 씁쓸했다"며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된 상황에서 젊고 능력있는 교수가 남아있으려고 할 지 염려스럽다"고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