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시장 넘버원 플레이어 '화이자'가 희귀질환영역에 '집중'을 선언했다. 고지혈증약 '리피토(아토르바스타틴)' 등 주로 1차 치료(primary care)로 유명한 빅파마의 도전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최근 기자와 만난 화이자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및 중동, 아태지역 등 희귀질환 부문 총괄 시난 아트리그(Sinan Atlig) 부사장은 "희귀질환영역도 화이자가 집중해 손대면 다르다"고 자신했다.
주장의 근거는 다양했다. 매출액, M&A 능력, 인력 수준, 제품 파이프라인, 분자 라이브러리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잘 모르는 사실 한 가지. 화이자는 이미 2014년 기준 희귀질환 치료제 매출액 4위(53억불, 6조1500억원 규모)를 차지한 이 분야 준비된 강자다. 경험까지 품은 빅파마 화이자라는 소리다.
화이자는 희귀질환영역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화이자는 연초 희귀질환 부문에 있어 2020년까지 선도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과거에도 화이자는 희귀질환 치료제를 보유했지만 하나의 카테고리로 구분하지 않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선포한 전례가 없었다.
집중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시장적 측면이다. 제약산업 자체는 환자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을 출발점으로 한다. 현재 1차 치료제 시장은 환자 니즈가 대부분 충족된 상태다. 환자 니즈가 시장 구도와 제약산업 비즈니스를 결정한다는 면에서 희귀질환영역을 택하게 됐다.
두 번째는 경쟁적 측면이다. 특화된 분야를 선정해 집중할 경우 인재확보나 의료진과의 관계 유지가 상대적으로 유리해진다. 특정 분야에서 리더로 자리매김하면 신제품 론칭, R&D 진행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 물레방아와 같은 구조다.
이런 역할을 담당하는 대부분 기업은 시가총액 규모도 크고 ROI(Return of Investment)도 높다. 당뇨병치료제 분야는 노보노디스크, 항암치료제 분야는 로슈가 일례다. 화이자 역시 이런 시너지를 내기 위해 희귀질환 등 6개 핵심 분야를 선정해 '선택과 집중'을 하려는 것이다.
젠자임, 샤이어 등 희귀질환영역에 특화된 소규모 바이오테크 기업에 비해 화이자와 같은 빅파마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인가.
규모(사이즈), 범주(스케일), 리소스 등을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화이자는 175개국 이상에 걸친 폭넓은 네트워크를 가진 큰 규모의 회사다. 그간 셋팅해 놓은 여러 가지 프로세스, 네트워크 등을 활용해 제품 허가부터 출시, 마케팅 등을 보다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다.
특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분자 라이브러리(molecule library)는 큰 강점이다. 작년에 이를 개방했다. 희귀질환 연구자와 과학자들이 화이자가 확보한 분자에 대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화이자는 희귀질환은 물론 여러 기전에 대한 분자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있어 전세계 과학자들이 해당 분자에 대해 화이자와는 다른 해법을 제시해줄 것을 기대한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많은 사람이 희귀질환 특화 제약사로 화이자를 떠올리지 않지만 실제로 화이자는 희귀질환 치료제 분야에 있어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점이 보다 잘 알려졌으면 한다.
화이자가 희귀질환영역에서도 집중할 영역은 무엇인가.
화이자 관점에서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혈우병 등 화이자가 이미 어느 정도 실적을 보이거나 족적을 남긴 분야고 두 번째는 유전자 치료(gene therapy)처럼 새로운 희귀질환 치료제 영역이다. 유전자 치료를 활용해 질병을 치료하면 해당질병 '완치'를 기대할 수도 있다.
유전자 치료로 희귀질환에 접근할 수 있는 시점은 2025년 혹은 그 이전에라도 올 수 있다고 본다. 화이자는 유전자 치료제가 도래할 시점, 즉 장기적인 관점에서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해 탄탄한 파이프라인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신약 중 절반 이상이 혁신적 치료(Breakthrough Therapy) 절차를 거쳐 빠르게 허가가 이뤄졌다. 이 같은 신속한 승인 절차는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가.
개인적 견해이지만 희귀질환은 지난 10~15년간 두 가지 이유로 제약산업의 큰 관심을 받게 됐다고 본다. 대표적으로는 미국 FDA나 유럽의약품기구(EMEA) 등 승인당국으로부터 제공받는 다양한 혜택이다.
신약개발에는 막대한 시간과 투자비용이 필요하며 이를 회수할 가능성도 희박해 제약사들이 투자를 꺼리게 된다. 제약산업도 자유시장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보니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더 많은 제약사가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도록 FDA나 EMEA가 인센티브를 마련한 것이다. 이를 테면 해당 신약 약가를 높게 책정할 수 있는 몇몇 기준과 권한을 부여해 신속하게 승인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희귀질환 치료제 관련 화이자 신약 중 '혁신적 치료' 시스템을 통해 승인받은 사례가 있나.
대표적으로 겸상 적혈구 빈혈증 치료제다. 이 약은 희귀질환 치료제로 지정돼 미국과 유럽에서 신속 승인(fast-track) 절차를 받게 됐다. 해당 질환 1차 치료제로 환자 니즈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다. 신약에 대한 신속한 승인절차는 제약사들이 똑같은 미투(me-too) 제품이 아닌 새 영역에 투자하도록 독려해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도 신약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제언으로 봐도 되는가.
국가마다 가치와 환경, 당면한 어려움이 모두 달라 구체적으로 조언할만한 입장은 아니다. 다만 최근 한국 정부가 희귀난치성질환 관련 정책에 관심이 많고 희귀질환관리법안을 제정한 것은 진심으로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 영역은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책적인 큰 틀 안에서 신약허가 절차 등이 간소화된다면 당연히 신약개발 움직임도 늘어날 것이다.
화이자 같은 경우는 적절한 타이밍에 M&A를 통해 발전해 온 회사다. 희귀질환 분야에서도 M&A를 고려하고 있는지.
그렇다. M&A는 화이자의 사업 전략 중에 하나다. 화이자가 빅파마로서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제약사들도 화이자와의 파트너십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을까 싶다. 소규모 제약사들은 화이자를 통해 150여개 이상의 국가에 제품을 빠르게 선보일 수 있는 장점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