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했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그렇게 즐거운 일인 줄은. 중고등학교 학창시절 입시에 찌들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공부에 매달린 그 순간들을 뒤로 하고, 가장 꽃다운 시간에 어쩌면 대학교 기간이 아니라면 해보기 힘든 활동들과 더불어 한 번 쯤은 관심이 있었기에 들어보고 싶었던 과목들을 바로 교환 학생 현장에서, 그것도 영어로 듣게 될 줄은 불과 보름 전 기말고사 끝나는 날까지만 해도 생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필자의 학교의 경우 타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과생에게 있어서 교환학생 기간에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은 없었다. 듣고 싶은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일정 학점만 넘긴다면 한 학기 이수로 인정해주고 있었다. 학교 커리큘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과목만 골라서 들을 수 있는 천금과 같은 순간이 온 것이다.
그리하여 필자가 최종적으로 고르게 된 과목은 총 5과목 12학점. 과목은 골프, 테니스, 웨이트 트레이닝, 천문학개론, 건축학개론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의대 다니는 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과목들이 의대 교과목들이랑은 거의 관련이 없다. 사실 각각의 과목을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필자가 교환학생으로 파견되었던 대학교는 미국 내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넓은 부지를 보유하고 있다. 걸어서 가로질러 가려면 발이 나름 빠르다고 자부하는 필자도 30분정도 걸릴 만큼 크다. 그리고 학교 바로 옆에는 학교 소유의 골프장과 공원이 있었다. 그렇기에 상황과 조건이 마련되어 있는 이번 기회가 골프를 제대로 배워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판단되어 골프 과목을 수강신청하게 되었다.
학교 내에는 테니스장, 배드민턴장, 수영장이 딸려 있는 헬스장, 스쿼시장, 실내농구장, 미식축구운동장 등 다양한 체육 시설들이 있었는데 대학교 학생이라면 이 모든 시설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또한 전문적인 체육 과목들을 운영하고 있던 터라 본과를 들어가기 전에 체력부터 단련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필자가 선택한 과목은 테니스와 웨이트 트레이닝이었다.
이 세 과목 모두 교수님들이 좋았고 특히 처음 배워보는 테니스와 골프의 경우 직접 한 학생씩 개인별 지도를 해 주었기 때문에 학기 말에 가서는 테니스의 경우 어느 정도 랠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출 수 있었고 골프도 하나도 못 치던 처음에 비해서 실력을 많이 향상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 수업으로 들었던 천문학과 건축학의 경우 필자가 관심이 있었던 분야라서 신청하게 되었는데 천문학개론 과목의 경우 내가 알고 있던 정보를 지식으로 바꿔준 감사한 과목이었다.
학교 내에서 배우는 이론보다 학교 밖에서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을 중요시한 교수님이셔서 때로는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다가 모두에게 자료를 주고 학생들을 데리고 강의실 밖으로 나가셔서 설명해 주시기를 좋아하셨다.
실제로 달과 별에 대해서 배울 때에는 강의 시간과는 별도로 저녁 때 망원경을 가지고서 설명해 주시기도 하셨다. 강의실 내에서 죽은 정보를 배우는 것보다 강의실 밖에서 생생한 지식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미국 대학 강의의 좋은 점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흔히 학창시절 때 대학교에 들어가면 공부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다 끝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진 적이 간혹 있었다.
그러나 대학교에 들어와서, 그리고 특히 교환학생 때 많이 느낀 점은 결국 공부라는 것은 지식을 쌓는 일이기도 하지만 내 가치를 높이는 자기계발의 의미 또한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 배움의 과정은 계속 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의사가 될 사람에게 천문학이나 건축학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알아가고 단순한 정보를 나만의 지식으로 만들고자 하는 열정, 거기에 더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기존의 지식과 융합시켜 새롭게 사고해 볼 수 있는 능력, 이 점이야 말로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는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일 것이다.
의사도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하고 도태되어서는 안 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대생도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아마 그 과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기는 어쩌면 의학 전공공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의예과 시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필자는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서 강의실 안의 지식보다 차원이 다른 새로운 세계를 배워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 배운 공부의 소중함은 앞으로 본과에 들어가서, 그리고 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의 길, 그 과정 중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교훈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