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방 창문이 암막커튼으로 가려져 아침이 온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잤다.
그런데 커튼을 걷어 보니 곧바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제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는데 호텔 앞이 바로 선셋으로 유명하다는 탄중아루 해변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일단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체크아웃하기 전에 해변가로 산책을 다녀오기로 했고, 처음 맞는 코타키나발루의 햇빛에 대비해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나섰다.
문 밖으로 나서자마자 뜨거운 태양과 함께 더운 바람이 몰려왔고 이대로 몇 분이나 더 걸을 수 있으려나 싶었지만 얼마 걷다보니 금세 익숙해져서 그제서야 해변의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해가 질 무렵이 되면 훨씬 더 아름다워진다던데 벌써 기대가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서 실습을 도는 매일 같은 일상 속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먼 타지에 와서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 감회가 새로웠다.
해변을 쭉 둘러본 후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다시 숙소로 돌아왔고, 짐을 다시 싸서 나갈 준비를 하였다.
호텔측에서 공항에 픽업도 와주고 시내에 위치한 다음 숙소로도 또 태워주겠다고 해서 정말 고마웠다.
차를 타고 가면서 코타키나발루의 시내 모습을 처음 구경하는데 아무래도 관광지이다 보니 곳곳에 크고 작은 호텔들이 많이 보였다.
멀리서부터 우리가 앞으로 계속 묵게 될 숙소가 보였고, 첫 날 숙소 직원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호텔로 들어가 다시 체크인을 하였다.
우리 가족의 여행 원칙이 있다면, 한국인들이 많은 곳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타지로 떠나는 여행인 만큼 한국인들이 누구나 가는 곳 보다는 이색적이고 색다른 곳에 가서 외국인들과 어우러지는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숙소를 정할 때도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의 여행자들이 남긴 후기나 평가를 보면서 가격 대비 괜찮은 평을 자랑하는 호텔로 골랐다.
하지만 늘 그렇듯, 숙소의 사진을 곧이 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말들이 있어서 약간 걱정을 하기는 했다.
체크인 할 때, 최대한 고층으로 배정해 달라고 말했고 직원분이 고맙게도 제일 꼭대기 층으로 배정해주었다.
그런데 웬걸, 방에 도착해 들어가 보니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컨디션의 룸이었고 사진보다도 더 좋아 보였다.
특히나 같이 가신 엄마가 너무 좋다고 만족해하셔서 다행이었다. 짐을 풀고 원래는 곧바로 시내 구경을 나갈 생각이었으나, 쾌적한 룸의 공기가 너무 좋아서 일단 짐도 풀지 않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쉬었다 가기로 했다.
여행의 묘미는 계획했던 것과 다른 또 다른 상황을 만나 생각지도 못한 순간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본격적인 첫 여행부터 스케줄과는 어긋나 버렸지만, 엄마와 나는 예정에 없던 휴식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