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지는 않았지만 잔뜩 흐린 날씨 탓에 코타키나발루의 완연한 석양의 참 모습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그 장소와 시간이 만들어 낸 그 특별한 순간은 우리에게 큰 선물로 남았다.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언제나 그랬듯 아쉬움이 남는 일을 하기로 했는데,엄마와 나는 공통적으로 저번에 받았던 마사지를 한 번 더 받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정의 제일 마지막으로 계획을 하고 미리 가서 예약을 해둔 뒤 한국으로 돌아가기 이전에 필요한 것들을 사러 가기로 했다.
코타키나발루는 여러 종류의 커피들이 유명한데,그 곳 현지에서 화이트 올드타운 커피라는 카페가 명성이 자자했다.
그래서 그곳에 직접 가 볼 생각이었으나 날씨가 너무 덥고 동선이 꼬여 커피 한 잔을 하러 가기에는 너무 무리인 것 같아 곧바로 단념했다.
하는 수 없이 숙소 가까이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로 이동했는데,반갑게도 그 곳에 화이트 올드타운 커피가 있었다!
물론 카페 자체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곳에서 그 카페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그곳에서 파는 커피를 시중에 내놓고 마트에서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판매하는 것 같았다.
종류가 매우 다양했지만 늘 첫 시작은 오리지널로 선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면서도 성공적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기에 큰 고민은 하지 않고 가장 대표적인 상품으로 골랐다.
여름이고 또 며칠 되지 않는 여행이었기에 짐을 거의 가져가지 않았지만 커피를 비롯해서 망고젤리 같은 간식류를 조금씩 사다보니 텅 비었던 가방이 어느덧 두둑해졌다.
그리고 오늘만큼은 코타키나발루의 석양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하며,석양을 보기 좋은 해안가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하늘의 장난일까,마지막 날 까지도 석양이 질 무렵이 다가오니 점점 더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바람까지 세차게 불기 시작했고,밖에서 식사하기가 어려울 만큼 바람과 함께 비도 내리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마지막 날 꿈꾸는 해안가에서의 석양을 보며 즐기는 저녁 식사는 하지 못했고,쇼핑몰 근처에서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마지막 식사를 대충 때우게 되었다.
오히려 근사한 곳에서 더 맛있는 식사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괜히 기대하는 석양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김이 빠져버렸던 것 같다.
우리는 약속한 시간에 맞춰 마사지 샵으로 이동했고,겨우 몇 번도 안 본 사이지만 구면이 된 마사지샵 분들과 벌써 정이 들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별 것은 없지만 두둑해진 가방을 챙겨 공항으로 나섰다.'탄중아루의 석양이 그렇게 이쁘다던데..' 하는 의미 없는 푸념도 늘어놓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아쉬움이 그 여행지를 다시 방문하게 만드는 이유기 되기도 한다는 생각이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석양을 볼 수 있을까'하는 걱정보다는 하루 하루를 새롭게 채워주는 소소한 즐거움들이 이번 여행을 더 즐겁게 만들어준 것 같다.
이렇게 코타키나발루라는 여행지는 나에게 무척이나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