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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자발적 근로자여 믿습니까? 주 52시간의 구원을




최선 기자
기사입력: 2018-07-05 11:56:55
"무슨 인건비가 이렇게 비싸담."

미국에서 놀란 적이 있다. 아니 혀를 찼다. 자전거 펑크를 때우는 데 40불을 달라고 했다. 인터넷을 설치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새벽 치킨 배달 주문은 상상도 못할 일. 사람을 부리는 건 충분히 느리고 비쌌다.

그때는 몰랐다. 기계화 되거나 자동화 된, 선진국만이 누릴 수 있는 '풍요'가 그들을 노동에서 해방시킨 원동력이라 생각했다. 유럽이 주 30시간제, 주 4일제를 떠들 때에도 그저 먼나라 이야기로 치부했다.

근로시간과 노동생산성 담론에서 늘 빠지지 않고 비교(또는 선망)의 대상이 된 독일. 신입과 경력직의 임금 격차가 적고 노동생산성은 최고에 가까운, 이상적인 나라. 기술과 자본의 힘이 노동자를 해방시킨 나라. 암기하듯 그렇게 외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욜로니 워라밸이니 SNS을 타고 신조어들이 또 하나 늘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워라밸과 관련된 취재를 하며 몇번이나 놀랐다. 호기심에 해외의 근로시간 단축 시기를 찾아보고는 와-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저녁있는 삶'은 노동을 대신해줄 자동화된 기계와 잉여 자본의 합작, 로봇 팔과 컨베이어 벨트로 대표되는 인간 개입을 최소화한 첨단 시설이 그 원천이라 생각했다. 못해도 선진국들 역시 2000년에 들어서야 근로 단축이 가능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드라마틱했다. 독일은 1967년 주 40시간 근무제를, 1995년부터 전 산업군에 주 38시간제를 도입했다. 1967년? 그렇다. 이들이 인간의 삶을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풍요로 점철된 시기가 아닌 2차 세계 대전 이후 폐허에서 갓 탈출한 때다. 전쟁 이후 산업 고도화 과정까지 서로 비슷했지만 선택은 달랐다.

워라밸 역시 신조어가 아니었다. 1970년대 영국에선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 단어가 등장했다. 40년이 지나서야 한국에서 늦깎이 신조어로 회자된 것이 더 의아했다. 국내에서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면 경제가 망할 것처럼 떠드는 호들갑이 주 5일제 도입 시기에도 있었다는 점도 그랬다.

최근 만난 제약사 영업사원은 52시간제 이후 콜 보고(거래처 방문 기록 작성)가 사라졌다고 귀띔했다. 업무가 줄었으니 기쁘지 않냐고 물었지만 '요식 행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한 용도일 뿐 실적을 강요하면 어쩔 수 없는 거래처와의 저녁 술자리가 '자발적'인 친목 모임으로 둔갑하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쉴 수 있는 시스템이 생겼지만 근로 가치를 존중하는 가치관은 뒷전이라는 것. 해야할 일의 양은 그대로요, 대체휴가를 내 봤자 눈치주는 현상은 여전하다는 뜻이다. 너무 오랜 기간, 가계가 기업에 양보만 해왔던 것은 아닐까. 야근, 주말 근무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될 만큼. 저녁있는 삶이 마치 특별한 이벤트인 것마냥.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사람을 부리는 일이 충분히 느리고 비쌌던 이유를. 근로시간 단축의 원동력이 무엇인지도. 근로의 가치를 존중하는 철학이 그 당연한 저녁 있는 삶을 일상으로 만들었다.

'자발적'인 근로자들이 넘쳐나는 나라. 주 52시간제는 과연 직장인의 저녁을 구원할 수 있을까? 자꾸 자발적 의지가 내 것인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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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ef*** 2020.09.00 00:00 신고

    먹먹하네.
    의약분업때 당해놓고, 또 당하네. 일단, 코로나 넘기고, 재논의하자. 노력하자.
    추진'강행'은 안해주마. 애초에 논의한 적 없이
    일방적 발표였으니, 재논의도 아닌 거고, 노력이란 애매모호한 말로 다 퉁쳤네. 추진 안 한다가 아니라 강행하지 않는다니,
    (현 정부 꼬락서니를 보면, 관변어용시민단체 다수 동원해, 국민뜻이라며 언론플레이후, 스리슬쩍 통과. 보나마나 '강행'은 아니라겠지.)
    정부 입장에서 도대체 뭐가 양보? 의사는 복귀하도록 노력한다가 아니라 복귀한다고. 욕먹고, 파업한 결과가 참,

    • heef*** 2020.09.00 00:00 신고

      먹먹하네.
      의약분업때 당해놓고, 또 당하네. 일단, 코로나 넘기고, 재논의하자. 노력하자.
      추진'강행'은 안해주마. 애초에 논의한 적 없이

    • heef*** 2020.09.00 00:00 신고

      먹먹하네.
      의약분업때 당해놓고, 또 당하네. 일단, 코로나 넘기고, 재논의하자. 노력하자.
      추진'강행'은 안해주마. 애초에 논의한 적 없이

  • heef*** 2020.09.00 00:00 신고

    먹먹하네.
    의약분업때 당해놓고, 또 당하네. 일단, 코로나 넘기고, 재논의하자. 노력하자.
    추진'강행'은 안해주마. 애초에 논의한 적 없이
    일방적 발표였으니, 재논의도 아닌 거고, 노력이란 애매모호한 말로 다 퉁쳤네. 추진 안 한다가 아니라 강행하지 않는다니,
    (현 정부 꼬락서니를 보면, 관변어용시민단체 다수 동원해, 국민뜻이라며 언론플레이후, 스리슬쩍 통과. 보나마나 '강행'은 아니라겠지.)
    정부 입장에서 도대체 뭐가 양보? 의사는 복귀하도록 노력한다가 아니라 복귀한다고. 욕먹고, 파업한 결과가 참,

  • heef*** 2020.09.00 00:00 신고

    먹먹하네.
    의약분업때 당해놓고, 또 당하네. 일단, 코로나 넘기고, 재논의하자. 노력하자.
    추진'강행'은 안해주마. 애초에 논의한 적 없이
    일방적 발표였으니, 재논의도 아닌 거고, 노력이란 애매모호한 말로 다 퉁쳤네. 추진 안 한다가 아니라 강행하지 않는다니,
    (현 정부 꼬락서니를 보면, 관변어용시민단체 다수 동원해, 국민뜻이라며 언론플레이후, 스리슬쩍 통과. 보나마나 '강행'은 아니라겠지.)
    정부 입장에서 도대체 뭐가 양보? 의사는 복귀하도록 노력한다가 아니라 복귀한다고. 욕먹고, 파업한 결과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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