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하고 병의원 시설 기준에 대한 규제책이 쏟아지면서 일선 개원가와 중소병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투입되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세입자의 입장에서 시설 투자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들의 하소연. 일각에서는 건물주만 살아남는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A이비인후과의원 원장은 17일 "이참에 아예 수술실과 입원실을 없애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공연히 유지하려다 아예 의원을 들어먹을 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요즘 소상공인 얘기가 이슈인데 따지고보면 개원의도 소상공인 아니냐"며 "지원책은 하나도 없고 하루가 멀다하며 규제책만 나오니 다 망하라는 얘기냐"고 반문했다.
이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는 것은 최근 수술실과 입원실 등에 대한 규제책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료법 시행 규칙에 의해 6월부터 수술실에 대한 규제가 대폭 강화된 상황이다. 모든 수술실을 격벽으로 나눠야 하고 감염 방지를 위해 공조 등 공기정화설비와 멸균 수세 등을 갖춰야 하는 상황.
만약 이를 갖추지 않았다가 적발될 경우 시정명령과 함께 업무정지 15일 등 행정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
여기에 최근 소방시설법령 개정안이 입법예고 되면서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개정안에 따라 입원실이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을 포함해 바닥 면적 합계가 1000㎡ 이상의 병원급 의료기관은 반드시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그나마 간이스프링쿨러를 설치하면 3년간 처분이 유예되지만 이 또한 비용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만큼 부담은 여전하다.
B중소병원 원장은 "설치비도 설치비지만 스프링클러 설치 공사가 얼마나 대공사인데 그 동안 환자들은 어디로 보내라는 말이냐"며 "최소 몇 달은 공사를 해야 하는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병원에서 그 손실을 어떻게 감당하라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공조 시스템에 스프링클러까지 만들려면 도대체 얼마나 병원을 비워야 하는지 상상도 하기 싫다"며 "이대로 앉아서 안 걸리기만 바라는 수 밖에 더 있겠냐"고 토로했다.
이들을 더욱 한숨 짓게 하는 것은 바로 세입자라는 특성 때문이다. 별도 병원 건물이 아닌 상황에서 이러한 공사가 가능하겠느냐는 반문이 나오는 이유다.
B외과의원 원장은 "백번 양보해서 수억원을 들여 공조시스템을 만들고 스프링클러를 설치한다 해도 결국 우리도 세입자인데 남의 건물을 때려부수는게 가능한 일이냐"며 "공사기간 동안 환자를 못받는건 둘째치고 수억원 들여 설치했는데 건물주가 나가라고 하면 그 손해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이어 그는 "결국 건물주 아니면 수술실도 입원실도 운영할 생각 말라는 것이 법 아니냐"며 "이런식으로 일차의료기관의 수술을 막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 놓이자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 단체들도 성토를 이어가고 있다. 현실과 맞지 않는 법으로 의료기관의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며 법안 철회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
의협 정성균 대변인은 "수많은 직종이 들어와 있는 집합건물에 의원에만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면 화재 예방이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현실은 도외시한 채 규제만 강화하는 탁상행정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개설 당시 시설 설비 상태를 허가해 놓고 이제와서 예외없이 의원급까지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라 하면 영세한 의원급과 중소병원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며 "소방시설법 입법예고를 취소하지 않는다면 협회 차원에서 법적인 조치를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