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비용을 들여 인허가를 받는다고 다가 아니다. 제품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어설픈 장밋빛 전략이라면 중국시장 진출 자체를 아예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한국 의료기기업체의 중국시장 진출 해법을 물어본 질문에 돌아온 답은 냉소적이었다.
국내 중국 의료기기 인허가 대행·컨설팅 전문가는 “중국 의료기기시장은 더 이상 한국 업체들에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중국산 의료기기 상당수가 한국보다 가격경쟁력은 물론 기술력까지 경쟁 우위에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더욱이 중국 정부의 수입 의료기기 규제·자국 의료기기 사용 정책과 함께 점점 까다로워지는 인허가 제도와 높은 심사비 또한 한국 업체들에게 시장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때나마 한국 의료기기는 중국에서 충분한 경쟁력이 있었다.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가격은 고가인 다국적기업 제품과 가격은 저렴하지만 기술력이 떨어지는 중국 로컬업체 사이에서 ‘가성비’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의료기기가 디지털 X-ray(DR)이었다.
한국은 의료영상정보화를 통해 필름 중심 CR(Computed Radiography)에서 ‘Filmless’를 실현한 PACS(Picture Archiving and Communication System·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가 활성화되면서 DR 도입이 빠르게 이뤄졌다.
당연히 한국 업체들의 DR 기술력만큼은 다국적기업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력은 중국 의료기기시장에서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중국 로컬업체들은 급속한 기술 발전으로 DR을 국산화한데 이어 경쟁 우위를 갖는 가격 정책과 AS를 내세워 한국 장비를 빠르게 대체해 나갔다.
중국시장에서 DR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 업체가 삼성전자 정도에 불과한 이유다.
한국 의료기기업체는 인구 약 14억의 거대시장 중국을 이대로 포기해야하는 걸까.
그 해법을 듣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 지난 1일 중국 심천(Shenzhen)에서 폐막한 ‘제80회 중국국제의료기기전시회’(CMEF Autumn 2018)에서 ‘제이피아이헬스케어’(이하 JPI 헬스케어) 김진국 대표를 만났다.
JPI 헬스케어는 X-ray 촬영 시 산란 방사선 방지와 고품질 X-ray 영상을 얻는데 중요한 장비 핵심부품 ‘그리드’(Grid)를 생산해 미국 독일 일본 등 전 세계 90개국 이상 수출하는 국내 강소기업.
지난 10월에는 심천에 중국법인을 설립해 연구개발 및 영업마케팅 강화에 나섰다.
김진국 대표는 CMEF 춘계·추계전시회 자사 부스를 직접 찾아 중국 현지 파트너와 개별 미팅을 갖는 등 중국 사업을 알뜰히 챙기고 있다.
그는 한국 의료기기업체들의 중국시장 진출에 대해 비관론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X-ray 장비를 놓고 봤을 때 중국 로컬업체와 한국 간 기술력 차이는 거의 없다”며 “무엇보다 한국 제품은 중국산과 비교해 가격경쟁력 자체가 없다”고 잘라 말한 것.
김 대표는 “솔직히 말해 한국 업체가 중국시장에 진출해도 (전략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며 “기술·가격·서비스 모든 측면에서 (중국 로컬업체와 경쟁해) 차별화하는 건 쉽지 않다”고 부연했다.
중국 의료기기 인허가 또한 한국 업체들의 시장진입 발목을 잡고 있다.
그는 “수입품목 허가에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신제품의 경우 인허가 획득까지 2~3년 정도는 다반사”라며 “의료기기 라이프 사이클이 길지 않은 걸 고려할 때 큰 비용을 들여 인증을 받아야하는지 의구심도 든다”고 밝혔다.
중국과의 좁혀진 기술격차와 가격경쟁력 또한 열세인 한국 업체들에게 돌파구는 없는 걸일까.
그는 기술우위에 있는 제품을 가지고 틈새시장을 파고들어야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완제품 보다는 핵심 부품·반제품 수출전략으로 돌파구를 찾아야한다고 주문했다.
김진국 대표는 “중국시장에서 한국의 X-ray 장비는 쉽지 않다. 하지만 골밀도측정기는 중국보다 기술 우위에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다”고 밝혔다.
덧붙여 “이제는 완제품으로 현지 로컬업체와 경쟁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의료기기 핵심 부품·모듈 및 반제품에 강점이 있는 회사가 중국시장 진출에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업체가 가격경쟁력은 있지만 DR·맘모그라피·C-arm 등에 필요한 ‘디텍터(Detector)·그리드’(Grid)와 같은 핵심 부품 기술력과 품질은 여전히 한국보다 뒤쳐져 있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중국 의료기기시장을 여전히 매력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단순히 의료기기시장 규모뿐만 아니라 연구개발 기술력도 함께 발전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협업을 위한 현지 진출의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시장 진출이 어렵다고 해서 포기하기보다는 기술 우위를 가진 핵심 부품·반제품을 수출하는 전략으로 틈새시장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디알텍, X-ray 핵심부품 ‘디텍터’로 중국시장 공략
완제품 보다는 기술적 우위에 있는 핵심 부품이나 반제품을 수출하라고 조언한 김진국 대표.
국내 X-ray 디텍터 전문회사 ‘디알텍’(DRTECH)은 김 대표가 제시한 중국시장 진출 전략에 부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회사는 중국 현지화를 위해 2017년 중국법인을 설립한데 이어 현지 생산 공장을 완공하고 현재 CFDA 생산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중국은 경제수준이 올라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진단영상검사가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DR과 같은 진단영상장비와 그 핵심 부품인 디텍터 수요 또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주목할 점은 중국 로컬업체들이 품질이 뛰어나고 안정적인 한국산 디텍터와 그리드를 선호한다는 것. 진보라 디알텍 마케팅 담당자는 “전체적으로 중국 X-ray 장비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인체용뿐만 아니라 반려견을 많이 키우면서 동물용 X-ray는 물론 병의원들이 기존 CR에서 DR로 업그레이드하면서 디텍터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이 같은 시장 분위기는 디알텍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디알텍은 유방용 X-ray 시스템을 DR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디텍터를 비롯해 직접 및 간접방식 디텍터 모두를 공급할 수 있는 차별화된 기술력과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중국시장에서의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진보라 마케팅 담당자는 “내년에 생산 허가를 받고 본격적인 제품 생산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중국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보통 북미방사선의학회(RSNA)에서 선보였던 디텍터 신제품을 이례적으로 CMEF Autumn 2018에 맞춰 3개 제품을 공개했다”며 “중국 대리점 및 딜러들이 우리 부스를 많이 방문했고 제품에 대한 높은 관심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의료기기시장 규모와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라며 “그간 현지 공략을 위한 사전준비를 철저히 해 온 만큼 중국 의료기기시장에서 회사의 성장 기회와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