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의료기기시장은 불과 10년 전만하더라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다.
현지 로컬업체보다 제품력 우위를, 다국적기업과 비교해 가격경쟁력이 있었던 한국 의료기기업체들에게 말이다.
상전벽해라고 했던가. 더 이상 중국은 호락호락한 시장이 아니다. 오히려 중국산 의료기기의 한국시장 잠식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국 업체들의 공통된 목소리는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전 CFDA) 허가심사가 까다로워지고 심사비 또한 크게 증가해 비용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자국 의료기기 사용 정책 또한 중국시장 진출을 가로막는 진입장벽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한국 의료기기업체들은 중국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13억 거대인구의 의료서비스 수요와 급속한 고령화는 물론 건강중국 2030(健康中國 2030)·민영병원 확대 등 정부 정책에 따른 중국 의료기기시장 성장세는 여전히 매력적이기 때문.
중국 정형외과 의사이자 Vanwa Healthcare社 Qian Feng(치엔 펑) 대표이사는 딜레마에 빠진 한국 업체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적임자.
1998년 ‘에이스메디칼’과의 협력을 시작으로 20년 넘게 한국 업체들의 중국 내 인허가부터 판매 및 성급 의료보험 제품 등록 등 성공적인 현지시장 진출을 도운 인물이다.
중국 의료기기 인허가 컨설팅 전문기업 ‘시노서울’ 초청으로 최근 방한한 치엔 펑 대표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오랜 시간 한국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경험하고 느낀 문제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한국 업체들이 중국 진출을 주저하는 이유로 내세운 의료기기 인허가 규제강화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치엔 펑 대표는 “사실 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의료기기 자체가 국민 안전과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중국 규제기관의 허가심사 강화는 당연한 일이다. 이를 진입장벽으로 말하는 건 맞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더불어 “최근에는 중국보다 유럽 인허가 규정이 더 까다로워졌다. 과연 이것이 문제인가”라고 반문한 뒤 “유럽이 CE 규정을 강화하는 것 또한 국제조화로 가는 정상화 수순”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의료기기 허가심사 강화는 세계적인 트렌드이자 그만큼 의료기기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 규제기관의 제도 차이 또한 한국 업체들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 요인으로 꼽았다.
실례로 ‘본질적 동등성’ 의료기기는 미국 FDA 510k와 중국 PMA(시판 전 허가) 제도가 매우 유사하다.
당연히 FDA 인허가 경험이 풍부한 미국·독일 업체들은 중국 NMPA 심사를 수월하게 통과하기 때문에 중국시장 진출이 용이하다.
NMPA의 해외공장 현지심사가 미국·독일 업체에 집중돼있는 이유다.
반면 한국의 경우 중국 PMA 제도와 심사시스템이 달라 상대적으로 한국 업체들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면 한국 업체들은 중국시장 진출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할까.
치엔 펑 대표는 중국 속담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까’(欲速则不达)를 인용해 무조건 제품만 팔면 된다는 근시안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허가 등록부터 현지 판매체계 구축, 구매조달 참여 등 충분한 사전조사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특히 중국시장에서의 성패는 결국 어떠한 제품을 공급하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문제지만 중국 역시 인구고령화·만성질환 증가 등에 따른 의료비 증가 문제에 직면해있다”며 “정부 입장에서는 의료비 절감을 위해 안전성을 확보하면서도 경제성을 갖춘 의료기기 공급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이 자국 의료기기만을 선호한다고 하지만 이는 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반박한 뒤 “중국은 모든 업체들의 가성비를 갖춘 의료기기를 적시적소에 공급하는 제품 등록·구매방식 등 의료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성(省) 또는 지역별 온라인 플랫폼, GPO(구매대행), 범지역 연합구매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의료기기·소모품 집중구매가 이뤄지고 있다.
이는 지역별 필요 수량에 따른 가격협상을 통해 경제성 있는 의료기기를 구매함으로써 의료비 절감에 그 목적이 있다.
중국 내 집중구매 조달방식은 현재 7가지에 달하며, 점점 다변화되고 있는 추세다.
치엔 펑 대표는 “중국에서는 매달 새로운 집중구매 조달방식이 생기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무조건 제품만 팔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계했다.
그러면서 “한국 업체들이 중국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구매방식 중 자사 제품에 유리한 입찰조건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고 조언했다.
특히 “무엇보다 제조 공정을 혁신적으로 개선해 최대한 생산비용을 절감하되 우수한 품질로 부가가치가 높고 가격경쟁력을 갖춘 의료기기를 공급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