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산업연수생제도 실시 이후로 ‘코리안 드림’을 쫓아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40만명이 넘어섰지만 그들은 기본적인 의료혜택 조차 받을 수 없었던 그들에게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비록 그동안 지역 의사회들과 시민단체들의 무료진료, 외국인노동자공제회 등이 활동해 왔지만 의사회의 활동, 외국인노동자공제회 등이 활동하곤 있지만 그 한계가 뚜렷했다.
그래서 이번에 개원한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은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상시적인 첫 병원이라는 데에 그 의의가 크다. 그 때문에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도 했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의 한 가운데에 이완주 원장(59·여)이 있다. 20여년을 서울 강남에서 소아과를 운영하던 이 원장은 과감히 병원을 접고 외국인노동자의원 원장의 길을 선택했다.
그저 의료 기술을 가지고 진료실을 벗어나 자유롭게 봉사활동을 하겠다던 꿈을 가진 이 원장이 50여명의 의사(시간제, 무료진료)와 30병상 규모의 병원을 운영하는 가시밭길로 들어선 것이다.
“인생은 60부터···” 새로운 출발점에 서다
그런 이완주 원장을 만난 건 우연의 일치였을까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 개원한지 꼭 세 달째 되던 날인 지난 22일이었다. 지난 인터뷰의 주인공, 이상이 교수를 만난 날이 진보의련 사건 일어난 지 꼭 3년째 되는 날이었던 것을 되새기면 신기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날의 인터뷰는 즉석 개원 3개월 기념 인터뷰. 4시 이후는 한가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타고 도착한 병원은 조선족으로 보이는 몇 명이 진료가 끝났는지 체중계와 혈압계에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하얀 가운을 입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대화하며 또 쉴새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이 원장이었다.
나이를 의식해서 일까 좀 여유롭고 할머니의 인상을 떠올리다, 실제로 활동적이고 정열적인 그를 알아채지 못할 뻔했다. 한편으론 그런 정열이 60이 가까운 나이에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했으리라는 생각도 하면서...
그래서 일까. 그의 이야기는 거침이 없었고, 그의 얼굴은 너무나 밝았다.
“개원을 하는 동안 나이 60이 되면 병원을 정리하고 자유롭게 의료봉사를 하면서 지낼 생각이었습니다. 이 병원은 전 의협 회장 신상진 선생님이 병원을 맡을 계획이었습니다만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저가 결국 이 일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일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2000년도부터 교회 내 의료 선교부를 구성해 의료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오면서 60 이후의 삶을 준비해왔다. 지난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이라크 현지를 방문해 의료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외국인 전용의원, 의료비가 비싸다?
외국인 전용의원을 이용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의료보험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감기와 같은 경증질환자도 없다. 이 원장은 “합법적으로 들어온 외국인들은 의료보험이 되는 경우도 있을뿐더러 그렇지 않더라도 경질환은 다른 이의 의료보험 카드를 빌려서 치료를 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연히 병원에는 최소한의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환자와 경질환을 넘어선 환자들이 몰려든다. 병원은 최소한의 운영을 위해 미보험 환자에게 의료보험 수가의 80%정도를 받고 있다. 따라서 금액 자체는 국내 의료기관의 본인부담금 보다는 높은 수준이 되는 셈이다.
병원이 개설 당시에는 후원과 지원이 많았지만 결국 병원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후원금보다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국가의 지원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원금에 기댈 수도 없다. 그렇다고 돈이 없는 환자를 돌려보내지는 않는다. 간혹 진료비가 없어 도망가는 환자들도 있다.
이 원장은 “의료보험 수가의 80%도 외국인 노동자에게 부담이 되는 금액”이라면서 “앞으로 의료보험수가의 30%정도만 받을 수 있도록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직원들의 월급만 해결되면 30%에서 50%까지 낮출 수 있을 텐데...”하며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또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장비 등에서 어려움이 많다. 협력병원인 고대 구로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긴 하지만 자체적으로 치료할 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 원장은 “지금 필요한 의료기기를 하나하나 구비하는 중인데, 쉽지가 않다”면서 “물리치료기계나, 임상병리 기계 등 안 쓰는 기구가 있다면 기증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꼭 당부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단상. 그리고 꿈
이 원장에 따르면 일하다 다치는 외국인들은 상당수가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일이 미숙한데다가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돌발 상황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그래서 정부가 새로 도입한 고용허가제를 잘 이해할 수 없다. 새로운 사람을 받기보다는 현재 숙련된 사람들을 일할 수 있도록 하면 사고도 줄이고 일의 능률도 오를 텐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원장이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어떻든 간에 외국인 전용병원에 대한 이 원장의 열정은 아직 첫걸음도 미쳐 다 내밀지 못했다. 그는 병원은 준 종합병원 정도까지 성장해 외국인들의 중증 질환까지 저렴하고 편안하게 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비록 산재환자로 간신히 병원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지만 꿈은 크다.
그리고 안산, 성남 등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지역에 새로운 병원들이 들어서 1차 진료가 막히면 서울 구로의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길 바란다. 또 아이를 가진 외국인 부부를 위한 탁아소 운영도 생각중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이 원장의 전화벨이 자꾸 바쁘게 울렸다. 우리나라 최초 외국인 노동자 병원 원장이 한가한 자리가 아님은 틀립없다. 그 길을 걷게 된 이 원장의 앞날이 고생길이 뻔할 것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가 이 길을 통해 얻을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깨닫기 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