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초기만 하더라도 난이도 면에서 악명이 높은 산악회였다. 험산준령을 등산로를 따라가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올랐다" 김석태 회장의 회상이다.
연세의료원 산악회는 매월 정기산행을 하고 간혹 해외 원정산행에 나서기도 한다. 창립첫해 경기도 가평의 귀목봉을 등반하면서 시작된 정기산행이 200회에 가까워졌다.
그동안 지리산 오대산등 국내의 이름난 명산은 오르지 않은 곳이 없고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등산로를 개척한 일도 손에 꼽기 어려울 만큼 많다.
18년 산악회 역사중 가장 의미있는 산행으로 100차 정기산행때 백두산을 오른일을 꼽는다. 회원들은 백두산 천지를 바라보면서 느긴 가슴 절절함과 심연의 떨림을 아직 잊지 못한다고 한다.
해외 산행도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옥산(대만) 키나발루(말레이시아) 킬리만자로(아프리카) 북, 남알프스(일본) 황산(중국)등 세계 각지의 유명산을 두루 올랐다. 해외산행에 따른 경비는 적금을 부어가며 마련했다.
수많은 산행을 하면서 많은 애피소드도 남겼다. 98년 여름 오대산 산행에 나섰다 하산길에 길을 잃어 회원들이 뿔뿔히 흩어진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고 안개까지 심해 한치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서로 흩어지지 않기 위해 3개 그룹으로 묶어 하산을 시작했는데 시계가 워낙 나빠 선두그룹을 후위에서 놓친 것이다.
이 산악회 고문을 맡고있는 소아과 이재승 교수는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후미 그룹에서 무슨 사고가 나지 않았나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워낙 계곡이 깊다보니 무전기도 무용지물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다행이 후미 그룹도 각각 길을 잡아 사고 없이 하산을 마쳤다.
회원들의 지인이 산행에 따라왔다 사고가 날 뻔한 일도 여러번 있었다. 몇년전 설악산을 등반하고 '독주폭포' 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는데 급경사 지역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오다가 한명이 줄을 놓쳐 20여미터 가량을 미끄러졌다.
그 아래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만약 부딪쳤더라면 큰일날 상황이었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바위와 바위 틈새로 미끄러지면서 폭포에 빠져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다.
산행을 하며 결혼에 골인한 회원도 일곱쌍이나 나왔다.
연세의료원 산악회는 산행을 통해 사회사업을 펼치기도 한다. 지난 2002년에는 한동안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소년소녀가장들과 합동산행을 하며 이들에게 도전정신과 희망을 심어줬다.
또 세브란스병원에 연수를 온 외국인 의사를 산행에 초대하기도 하고 외부산악회와 합동산행을 실시하기도 한다.
매달 정기적으로 산행을 이어가는데 따른 여러움도 있다.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김형철 총무는 "가족들을 버리고 혼자만 놀러다니는 것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경제사정이 어렵다 보니 산행경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주변의 어려움도 이들의 산행을 막지는 못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비오듯 땀을 흘리고 오른 정상, 그리고 그정상에서 나누는 한잔 소주의 맛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희열이다.
"산은 요구하지도 않고 강요하지 않고 명령하지 않는다. 다만 넉넉한 가슴으로 감싸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