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에 위치한 덕산병원은 32년 병원 역사를 뒤로 한채 폐업을 준비하고 있다.
126병상에 11개 진료과를 갖추고 구로구 지역 2차 의료의 한 축을 담당했던 병원이 IMF위기와 의약분업이란 거대한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침몰하고 있는 것이다.
경영난 해소를 위해 여기저기서 끌어다 쓴 금융부채가 100억원에 이르는데다 경영정상화를 위해 최후의 카드로 빼들었던 영안실마저 지역주민의 거센 반발로 가동 한번 해보지 못한채 용도폐기됐기 때문이다.
37억원이라는 사채를 빌려 증축을 시도한 영안실은 오히려 빚만 늘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유영환 기획실장은 “오류동 일대에서는 그래도 환자가 몰리는 병원이란 얘기를 들어왔지만 이제는 옛날 얘기가 됐다"며 "늘어나는 부채와 적자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매각을 준비 중”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정철 원장은 얼마 전 진료과별 실무운영진을 한데 모아 병원을 매각하더라도 직원들의 퇴직금은 꼭 챙겨주겠노라고 차마 건네기 어려운 말을 던졌다.
이에 따라 이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150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제각각 살길을 찾아 뿔뿔히 흩어져야 할 처지에 몰렸다.
12명의 의사들은 그나마 자력으로 다른 병원에 자리를 마련할 수 있지만 간호사와 행정인력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다.
기자가 병원을 찾은 월요일 오후 진료대기실 앞의 환자들은 넓은 소파에 한 두 명씩 앉아 한가로운 듯 잡담을 나누고, 의례 입원환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을 법한 TV앞에는 중년의 아주머니 혼자 어깨를 내리고 있어 왠지 쓸쓸한 기운이 더했다.
21년 동안 덕산병원에 몸을 담아온 유 실장은 늘어만 가는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올 4월 영안실을 준공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다. 줄어만 가는 환자진료 수입을 메우기 위해 진료외수입을 찾을 수 밖에 없었던 것. 하지만 인근 오류동과 개봉동 지역 주민은 병원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영안실 자체를 기피 아이들 교육에 큰 해가 된다며 올 1월부터 6월까지 병원 앞에 진을 치고 집단시위를 벌였다.
종합병원 시설기준에 영안실이 버젓이 명시되어 있지만 지역주민들은 자신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다 지어 놓은 영안실은 무용지물이 됐다. 그리고 정작 병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리자 인근 주민들은 병원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을 것이라며 조심스레 아쉽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정철 원장은 어차피 문을 닫기로 한 바에 기자와 무슨 말을 나누겠냐며 짧은 전화통화만을 허락했다. 68세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진료현장에 몸을 담고 있는 한 원장은 자신이 선택한 천직을 평생 이어가겠다는 생각을 가졌을 뿐 이렇듯 떠밀리듯 병원을 접으리라고는 생각치 않았던 것.
유 실장은 “그나마 지금이라도 병원을 내놓아 200-250억원 수준에 팔리면 100억원은 빚을 갚고, 나머지로 직원들의 퇴직금을 챙겨줄 수 있다면 다행일 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수십억을 들인 C/T나 MRI 등 고가의 장비도 타 병원들이 다 보유하고 있을만한 장비이기에 병원과 함께 고철더미가 될 신세에 놓였다.
32년 병원의 역사가 오늘내일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유 실장은 “34억이라는 적자가 100억에 이르기까지 우리 병원에서는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 그저 열심히 환자를 위해 애써 온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환자진료를 담당하는 의사가 월급이 낮다고 병원문을 나서도 현실이 그러니 어쩌겠냐. 더 나은 길이 있다면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겠냐고 오히려 반문하는 그에게서 힘든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마저 엿보였다.
하지만 더욱 아쉬운 것은 병원을 사겠다는 사람 가운데는 병원운영을 염두에 두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진료수입체계로는 도저히 적자를 만회할 길이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매각이 성사되면 병원 자리에는 앞으로 쇼핑몰과 아파트가 혼합된 형태의 주상복합타운이 들어설 예정이지만, 주변 상가의 한 주민은 백화점이 밀집해 있는 영등포가 가까워 과연 주상복합타운이 성공할 지 의문이라며 차라리 병원으로 계속 있는 게 낫지 않겠냐고 걱정스런 맘을 감추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서는 길에 돌아본 덕산병원은 을씨년스럽게도 쉼없이 떨어지는 빗줄기를 고스란히 맞아 들이며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조심스럽게 이어가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