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삶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부나 명예라는 인간의 가치도 바위을 치워주거나 고정시켜 주지 못한다.
진료실은 시지프스의 삶이 현실화되는 장소다.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삶을 끊임없이 외롭게 반복해야 한다. 그것도 홀로.
‘글’은 진료실의 의사와 사회를 이어주는 좋은 통로다. 서민들이 느끼는 부유함에 대한 부러움과 일반인의 존경 혹은 냉혹한 시선과 의사라는 일방적 관계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람을 대등한 관계로 이어주는 매개체다.
진료실 밖을 꿈꾸는 사람들
유독 의사들은 글과 가깝다. 누구 말마따나 ‘문과’도 아닌 ‘이과’인데. 진료실의 창을 넘어 글과 글로 서로를 공유한다. 부산의사문우회도 그러한 공유를 위한 모임이다.
잦은 모임이 매월 열리는 것도 아니지만 문우회는 벌써 7번째 ’醫窓너머로’를 발간했다. 모임이라고 해봤자 매년 한번 여는 출판 기념회와 아주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좌담회 정도.
그럼에도 97년 9명에서 시작한 회원은 벌써 60여명을 넘어서고 있다. 의사들은 한해동안 진료실 한 켠에 틈틈이 쓴 글들을 고르고 골라 ’醫窓너머로’에 담는다.
이미 등단한 의사, 대학병원장, 평범한 개원의 등 회원들의 구성은 다양하지만 글을 쓰는데 있어서는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다. 글도 수필, 칼럼, 시 등 다양하다.
’醫窓너머로’ 만난 사람들
딱딱하고 건조한 기사 속에서 만났던 전병찬 고신대병원장은 ’醫窓너머로’에서 자신이 기사속에 비치는 딱딱하고 건조함 사람이 아님을 항변한다.
기사로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부도난 병원을 떠맡은 그의 개인적 감정과 비애를, 그래서 그 병원을 살리기 위해서 온갖 결심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 아픔을 진정성을 담아 글 속에 담겼다.
일상의 세미나도 잊은 채 과거의 흔적을 찾아 ‘푸른 어둠이 내리는 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고 다닌 이귀숙 원장의 일탈은 아직도 꿈을 잊지 않은 많은 이들의 고민, 그 아픔과 다르지 않다.
스스로 의사이면서 생명 앞에서 철저하고 노력하지 않는 ‘의사는 싫다’는 이정희 원장의 글은 누구라도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글 속에, 다른 생각을 담아”
부산의사문우회 이귀숙 씨는 4번째 ’醫窓너머로’부터 참여했다. 매일 매일 쓴 글들을 중 하나를 책에 담는다. 혼자 책을 내거나 한 적은 없다.
그는 “몇 평 남직한 진료실에서 의사는 한정돼 있다”면서 “글을 씀으로서 벗어나고픈 욕구를 대신한다”고 말한다.
글은 다른 소재와는 다르다. 글은 공유하는 범위가 넓으며 사회와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문우회 회원들이 모이면 이야기의 주제는 너무나 다양하다.
그는 “의사이기에 다른 이들보다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다른 소재를 다룰 수 있다”고도 말한다. 최근에는 의사로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쳐 온 탓에 그러한 고민들을 담기도 한다.
바위를 밀어올리지 않는 시지프스는 시지프스가 아니라고 했다. 삶을 탈출하고 싶은 인간이 삶을 탈출해버리면 스스로 인간임을 부정당하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간은 삶의 전부를 탈출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과 의사문우회는 글을 통해 탈출을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