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대 박인숙(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사진) 학장이 남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여자전공의 3개월 출산휴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는 대한전공의협의회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자전공의 출산휴가를 수련기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요구와 상반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울산의대 박인숙 학장은 최근 한국의학원이 발간한 ‘한국 의료 발전을 위한 보건의료 어젠다’ 단행본에 ‘여자전공의 법정분만 휴가법 제정에 즈음하여’란 글을 실었다.
박 학장은 책에서 “최근 노동법 개정으로 여자전공의도 일반 여자근로자와 같이 3개월 유급 분만휴가를 받는 것이 공식 허용되었다”면서 “과연 이러한 제도가 여의사들의 권익을 위해 정말 바람직한 제도인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며 화두를 던졌다.
많은 임상과에서 여자전공의를 기피하고, 수석졸업생들조차 본교에서 원하는 임상과를 전공하지 못해 타 병원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의료기관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3개월 유급휴가를 주는 것은 여의사들의 더 큰 권익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 박 학장의 설명이다.
그는 “수련의란 남녀와 무관하게 똑같이 제한된 기간 안에 반드시 습득해야 할 지식과 경험을 충분히 축적하고 수련을 끝내면 더 높은 수준의 연구와 교육, 또는 더 나은 수입이 보장된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준비하는 고도의 전문직으로서 결코 일반근로자와 똑같이 간주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근로자와 같은 유급 분만휴가를 요구하는 것은 여의사 스스로를 비하하는 소치이며, 당장 개개인의 편안함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모든 여의사들에게 불평등과 불이익의 악순환을 영구히 지속시키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박 학장은 “이제 오래지 않아 전체 의사의 절반 이상이 여의사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임신할 때마다 3개월씩 분만휴가를 받는다면 업무와 수련에 많은 무리가 따르고, 남자전공의들이나 임신하지 않은 여자전공의들과의 형평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박 학장은 남자, 여자, 기혼, 미혼에 상관없이 모든 전공의들이 법적으로 지정된 수련을 모두 완료했을 때에만 전문의시험 응시자격을 주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하고 나섰다.
그는 미국 휴스턴의 Baylor의대 부속병원에서 근무할 당시 전공의, 교수를 포함한 모든 여의사들에게 따로 정해진 분만휴가가 없었으며, 출산을 앞둔 여의사들은 휴가를 모아 분만을 하거나 무급 분만휴가를 받은 뒤 휴가기간 만큼 수련기간이 연장됐다고 소개했다.
박 학장은 “여의사의 분만휴가를 없애고, 수련기간 준수를 더 강화하자는 제안에 반대의견도 많을 것으로 예상되며 언뜻 생각하면 여의사들의 입지를 스스로 좁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좀더 넓고 긴 안목으로 보면 오히려 모든 면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무런 희생 없이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과거의 악습이 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박 학장은 “남자의사는 그냥 ‘의사’, 여자의사는 꼭 ‘여자의사’라고 부른다는 사실이 불쾌하게 느껴진다면 과연 분만휴가 3개월을 주장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지금과 같은 불평등이 없는 더 나은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전공의 유모씨가 인턴 수련기간 중 출산휴가 3개월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6개월을 추가근무토록 한 것은 차별이라며 제기한 진정에 대해 ‘산전후 휴가기간을 수련기간으로 인정하라’고 권고해 박 학장과 상반된 견해를 드러냈다.
그러나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병원협회가 이 문제를 두고 여전히 견해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책이 출간돼 논쟁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