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억울한 삭감이 반복되다보니 도저히 병원을 꾸려갈 수가 없습니다. 병원 문을 닫고 비만치료나 노화방지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개원 6년차인 유능한 한 산부인과전문의가 심평원의 반복적인 삭감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의원을 폐업키로 결정해 심사의 적정성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수원에서 산부인과의원을 개원중인 전문의 오모 원장은 2일 자신의 기막힌 사연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오씨는 매달 200~300만원의 급여비를 청구해 왔지만 지난 1월에는 공단으로부터 한푼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2월에는 기껏 45만원을 받았고, 3월에는 100만원 가량 삭감 통보를 받았다.
오 원장은 “영세한 의원에서 진료비를 받아야 임대료도 내고 간호사 월급도 주는 데 이렇게 심사 결정액이 들쭉날쭉해 도저히 의원을 지탱할 수 없다”면서 “눈물을 머금고 폐업을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오 원장의 삭감액이 많은 것은 다른 산부인과의 동일진료, 동일상병과 비교할 때 특정 술기 산정빈도가 높다는 것이 이유다.
심평원이 2일 오 원장에게 통보한 이의신청 결정문에는 “귀원의 진료비 명세서 검토결과 상병 자궁목의 미란 및 외반증, 자궁목의 염증성 질환 산정빈도가 다른 요양기관의 동일진료, 동일상병계통 청구내용과 비교할 때 다소 높고, 자궁경부 약물소작술 시행도 현저히 높다”고 지적했다.
심평원은 약물소작술 대신 알보칠질정으로 대체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고려할 것을 주문하고 나섰다.
오 원장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그는 “난치성 자궁경부염이나 미란 환자들은 이미 다른 병원에서 한두번 알보칠질정 치료를 받고 본원에 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오 원장은 “올해 1월부터 이들 질병에 대해 고주파 응고술을 시행하기 이전에 그린티 엑기스와 알보칠 약물, 실바딘으로 먼저 치료하기로 치료방향을 변경했고, 이 때문에 약물소작술 빈도가 높아진 것은 당연하다”고 맞받았다.
고주파 응고술을 시행할 경우 링겔 주사를 해야 하고, 치료기간이 길지만 약물소작술은 치료방법이 비교적 간단해 변경했다는 것이다.
특히 고주파 응고술은 수가가 2만4천여원이지만 약물소작술은 1만1천여원에 불과해 환자 본인부담금이나 공단 부담금이 오히려 저렴해 문제될 게 전혀 없다는 것이 오 원장의 설명이다.
오 원장이 자궁경부질환 환자가 많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는 서울대병원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수련을 받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부인종양학을 전공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원 지도교수인 이효표 교수는 한국 자궁경부암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자궁경부 질환이나 암, 종양 치료 효과가 우수했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오 원장은 말했다.
자궁경부 환자들이 많이 오니까 상병코드가 많고, 약물소작술 빈도가 다른 의원보다 많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항변이다.
그는 “부인종양학 전문의가 치료하니까 치료 빈도가 높은 것은 한국의 의료체계상 당연하지 않느냐”면서 “마치 불임 전문 의원에 불임 코드가 많고, 산과 전문 의원에 산과 코드가 많은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심평원은 획일적인 의료와 하향평준화를 강요하는 기관이냐”면서 “그럼 도대체 한달에 진료비를 몇 건 산정해야 하느냐고 심평원에 물으면 대답도 못하면서 의사는 치료방법조차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우리나라 의료의 현실”이라고 허탈해 했다.
이에 따라 그는 폐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동료 의사들이 부당한 심사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자는 뜻에서 최근 복지부에 억울한 사연을 해결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그는 “산부인과가 다 망해가고 있지만 참고 참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운영할 수가 없어 떠나려고 한다”면서 “서울로 상경해 봉직의를 하거나 비만치료나 노화방지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향후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는 “산부인과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병원은 운영할 수 없고 변칙으로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심평원측은 "청구빈도가 높아 반드시 삭감한 것은 아니며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자문과 진료내역을 분석한 결과 미비한 것이 있어 조정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심평원은 자궁경부질환에 약물소작술을 시행하는 것이 부적합한 것은 아니며 평균빈도를 정해놓고 심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참고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어 심사기법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한편 심평원은 오 원장이 진료비 심사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면 재심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떠난 마음을 다시 붙잡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