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를 진료한 전공의에게 업무상 과실이 있다 하더라도 환자 사망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면 무죄라는 판결이 나왔다.
22일 대법원이 공개한 법원의 최근 판례에 따르면 2002년 3월부터 제주도의 한 수련병원에서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1년차로 근무하던 피고는 그해 5월 오전 7시경 병원 응급실에서 당시 25개월 된 피해자 김모(여) 환자를 진료했다.
피고는 환자가 새벽부터 열이 높았고, 체온이 39.3°C를 기록하자 해열제를 처방하고, 폐렴 확인을 위해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촬영하는 등 응급조치를 취했다.
또 엑스레이 판독 결과 특이 소견이 없자 환자 보호자에게 천식 치료를 위해 벤토린 네블라이저 호흡 보조치료를 하고, 수건으로 피해자를 물찜질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환자 보호자는 7시 40분경 환자의 가슴과 몸에서 검붉고 굵은 반점들을 발견하고, 즉시 피고에게 반점을 보여주었지만 피고는 의사생활을 하면서 그 원인과 치료방법을 알지 못하면서도 ‘고열로 인한 열꽃인 것 같다. 9시가 되면 소아과 진료가 시작되니까 소아과 과장에게 진단을 받자’고 말했다.
피고는 8시 15분경 환자의 체온이 떨어졌지만 피부 반점이 호전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소아과 전문의에게 전혀 문의하지 않은 채 약 1시간 이상 환자를 방치한 업무상 과실를 범했고, 환자는 패혈증의증에 의한 쇼크로 사망에 이르렀다.
그러자 환자 보호자는 다음해 7월 담당 전공의를 업무상 과실치사협의로 고소했다.
이에 대해 제주지방법원은 지난해말 판결을 통해 “경력이 3개월인 가정의학과 전공의가 환자의 외부 증상과 진행 상황만 보고 패혈증으로 의심하고, 혈액검사에 의한 패혈증 확진 없이 의심에 따라 항생제를 투여하는 등 응급처방을 실시한다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다시 말해 환자의 증상만으로 패혈증 발병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문지식과 임상경험이 요구되며, 환자에게 패혈증 발병을 예상하거나 의심할만한 특별한 증상이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증상이 나타났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응급처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는 신속하게 전문의나 선배의사에게 환자 증상과 진행상황을 설명하고 적절한 응급조치를 취하는 한편 소아과 전문의를 호출하고, 기초적인 혈액검사 등을 취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지만 환자를 응급실에 방치한 행위는 업무상 과실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형사재판에 있어 전공의에게 요구되는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해 소아과 전문의로부터 지시 내지 조언을 받아 응급조치를 취하는 등 신속히 대처했다면 환자가 사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입증되는 경우에 한해 의사의 과실과 환자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며 무죄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