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백혈병 환우회가 임의 비급여 문제를 제기하면서 의료기관과 환자간 불신이 증폭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학병원들이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한 약재나 치료재료를 불가피하게 사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민원을 제기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미디어 다음의 ‘아고라’는 8일 ‘평범한 국민’이란 네티즌이 ‘집안 자랑이던 의사, 추적60분에 무너져’란 글을 핫이슈로 올렸다.
그는 “어제도 오늘도 응급실과 병동에서 열심히 환자 보고 있는 의사이다보니 36시간 꼬박 당직 서고 잠 오는 눈을 비비며 추적60분을 봤다”면서 “방송을 다 보고난 후 이제 집안의 자랑이 더 이상 아니다. 한순간에 비윤리적, 비도덕적 도둑놈이 되고 말았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오늘 저녁 친척 어른 한분이 제게 전화했는데 첫마디가 ‘너도 그렇게 사기 치냐’였다”면서 “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전 집안의 자랑이 아니라 수치가 되어버렸다”고 털어놨다.
그는 “의사가 되기 위해 10여년을 보냈고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일하는 의사가 된 지금 너무나 허망하다”면서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하진 않겠지만 앞으로 달라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심평원이 제출하라는 약물투여 소견서 작성도 이골이 나고, 앞으로는 보험에서 인정하는 약물투여와 처치만 할 것”이라면서 “그게 정부와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백혈병 환우회과 KBS 2TV 추적60분이 병원의 임의 비급여 문제를 폭로하면서 상당수 의사들이 이와 비슷한 자괴감을 호소하고 있다.
“보험대로 싸구려 약만 쓰자. 어차피 비보험 영역의 비싼 약 쓴다고 병원수입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국민들에게 좋은 소리 듣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심평원에서 하라는대로 하자”라는 자포자기식 표현은 의사들의 정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서울의 모대학병원 교수는 “통상적으로 암환자가 입원하면 고가 신약의 경우 건강보험 혜택을 볼 수 없는데 투여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고, 동의를 받는데 나중에 환자가 사망하고 나면 심평원에 진료비 확인신청 민원을 제기하는 사례가 있다”면서 “고맙다는 인사는 듣지 못할망정 임의 비급여 때문에 당하고 나면 너무 허망하다”고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백혈병 환우회가 임의 비급여 실태를 폭로하면서 심평원에 진료비 확인신청 민원이 급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치료가 종결된 후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또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는 “지금도 일부 환자 보호자들은 환자가 사망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고 나면 심평원에 임의 비급여 민원을 제기하고 있어 골치가 아픈데 앞으로 더욱 이런 일이 더욱 빈번해 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대부분의 대학병원 교수들은 생명과 명예를 위해 일하지 돈을 벌기 위한 일을 절대 하지 않는다”면서 “그런데 환자들은 의료기관을 불신하고, 의료기관들은 환자들에게 최선의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한 약제를 쓸 수밖에 없는데 나중에 민원을 넣으면 어쩌나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