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의 과실로 인해 태아가 분만중 사망했다면 부모에 대한 위자료를 산정할 때 태아의 손해도 참작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7부는 분만 도중 사망한 태아의 부모가 모대학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피고병원은 2004년 7월 임신 40주째인 원고가 유도분만을 위해 입원하자 자궁경부가 3~4cm 개대된 상태에서 인공양막파수를 시행한 결과 양수에 태반착색이 없었고, 태아심박동수도 정상이었다.
피고병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저녁 모임에서 맥주 2병을 마시다 병원의 호출을 받고 자궁경관이 완전 개대되지 않은 원고를 분만대로 옮기도록 하고 전공의에게 푸싱(pushing) 하도록 지시했으며, 태아곤란증을 의심하고 흡입분만을 시도해 태아를 분만했다.
그러나 태아는 전신에 청색증 소견을 보이며 심박동이 없었고, 분만일시에 사산했다.
그러자 원고측은 태아의 사산이 의료기관의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임을 전제로 태아가 분만중에 사망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사람으로서 권리능력을 취득한 후에 사망한 것이므로 손해액 상당을 위자료로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법원은 “우리 민법의 해석상으로는 사람의 출생시기를 태아가 모체로부터 전부 노출된 때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며 망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법원은 전부노출설을 취할 경우 이미 분만이 개시된 태아가 위험한 상황에 빠지는 것을 방치하거나 의료과로를 은폐하는 수단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점, 분만이 개시된 단계에 이른 태아는 그 생명적 가치나 보호의 필요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출산을 마친 신생아 못지않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따라 법원은 “태아의 부모에 대해 의료과로로 인한 위자료를 산정할 때 출산을 마친 직후 사망한 신생아의 손해에 대한 법적 평가액을 아울러 참작함이 상당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