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으로 말 못할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으나 정부와 의료계의 대책은 저조해 국가차원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7일 한국복합부위통증증후군환우회와 통증학회에 따르면,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의 자살이 매년 이어지고 있으며 자살충동 경험자의 수는 더욱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 5월, 40대 중반 한 여성 환자가 개인병원에서 수면안정제를 다량으로 복용해 자살한 사건이 발생해 CRPS 환자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복합부위통증증후군환우회 이용우 회장은 “복합부위통증은 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 통증으로 손댈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호소해 일상생활과 대인관계에 따른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동반하게 된다”며 “이번에 자살한 여성환자도 환우회 차원에서 전화통화했을 때는 전혀 자살 같은 극한상황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평범한 여성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용우 회장은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 선진국 환우회와 네트워크를 형성해 활동하고 있으나 이들이 묻는 주된 질문은 환자 상담을 위한 핫라인이 마련돼지 않았냐는 것”이라고 전하고 “특히 미국의 경우, CRPS 환자를 위해 통증클리닉과 정신과간 협진치료로 통증으로 인한 우울증과 자살충동을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며 희귀·난치성 환자를 위한 선진국의 섬세한 보건의료 시스템을 예시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자살예방을 위한 전화상담이나 전문의 상담 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들 단체들의 예산과 인원이 턱없이 부족해 생색내기에도 힘에 부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자살예방협회 관계자는 “지난 2005년 창립된 협회(전화 02-413-0892,3) 사이버 상담건수가 지난해 1108건에서 올해 5월 818건으로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며 “하지만 협회의 1년 예산이 5억원이고 이중 3억3000만원이 광고비로 책정되어 있어 실질적으로 사무국에서 비공식적으로 운영하는 전화상담자는 2명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복지부, 자살예방협회 지원 '미비'
협회 관계자는 이어 “복지부 국민건강증진기금에 의해 민간단체로 운영되고 있으나 기업체나 사회단체의 후원은 ‘자살’에 대한 비관적 시각으로 거의 찾아볼 수 없는게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대인관계와 신체·정신질환 상담의뢰자가 70%를 차지하고 있으나 이들을 심리적으로 안정시키고 지속적으로 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게 솔직한 표현”이라며 복지부의 거창한 수식어로 창립된 자살예방협회의 답답한 현주소를 짐작하게 했다.
최근 몇 년간 유명 연예인의 자살소식이 이어지면서 자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나 단면적이고 일회성에 머물고 있어 다양한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이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은 사회의 사각지대로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통증학회 김찬 회장(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은 “극심한 통증으로 시달리는 CRPS 등 환자들의 우울증과 자살충동은 외래진료에서도 많이 경험하고 있다”며 “조기치료를 강화해 만성통증으로 악화되는 것을 예방하고 정부도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김찬 회장은 “환자 스스로도 질환에 대한 정확한 인식으로 통증에 따른 스트레스를 취미생활로 극복할 수 있는 자기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하고 “이를 위해 학회 차원에서 통증 환자를 위한 상담과 계몽 활동을 준비 중에 있으나 사회적인 협조와 관심이 미진해 안타깝다”며 희귀난치성 환자군 관리를 위한 의료계와 정부의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5년 한해 사망자 중 자살이 △1위:암 △2위:뇌혈관질환 △3위:심장질환 등에 이은 4위로 나타나 교통사고(7위)와 당뇨(5위) 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