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의 보건서비스 향상을 목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의료기관평가가 각 병원들의 편법 대응으로 그 취지를 잃고 있어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보건의료노조는 8일 자체적으로 실시한 병원별 의료기관평가 실태조사결과를 근거로 이같이 주장하고 의료기관별 특성에 맞는 평가지표 개발 등 실질적인 평가를 위한 정부의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노조는 "복지부는 1주기 평가에서 문제가 됐던 부분을 전면적으로 개선했다고 설명하지만 노조의 조사결과 병원 현장의 편법대응은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과연 이 평가가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의료기관평가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노조의 조사결과 1주기 의료기관평가를 받은 병원의 직원들은 각종 편법사례를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설문에 응답한 직원중 74.1%는 소속병원에서 의료기관평가를 대비키 위해 시설을 임시 개·보수했다고 답했으며 66.7%가 근무시간을 일방적으로 조정하거나 평소 하지 않았던 업무가 추가됐다고 전했다.
임시로 개보수한 시설도 다양했다. 간호사 병동회비로 책장 등을 구입한 사례가 있었으며 직원식당을 개조해 외래환자 식당을 설치한 사례도 있었다.
특히 일부 병원은 적정인력평가를 받기 위해 10개가 운영되던 수술실을 8개로 축소한 뒤 평가 전 자동문까지 뜯어내고 수술을 시행하는 웃지못한 광경도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평가를 위해 임시인력을 고용한 경우도 많았다.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중 88.9%가 임시계약직을 채용해 의료기관평가에 대비했다고 응답했으며 자원봉사자들을 대거 투입하고 한 병원은 공익근무요원을 투입한 예도 있었다.
사례별로는 도우미아줌마나 자원봉사자를 이용해 차트 운반업무 및 안내데스크에 배치하는 사례가 많았으며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차트운반업무를 담당케 하고 주차관리요원을 대폭 고용한 사례가 있었다.
직원을 환자로 둔갑시키거나 입원환자를 조기퇴원시키는 등 구체적인 편법사례도 만연했다.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 중 절반이 넘는 55.6%의 병원이 이러한 편법을 자행하고 있었던 것.
실제로 면담에 대비하기 위해 특정 보호자나 환자를 지명해 교육시키고 긍정적인 답변을 외우게 했으며 병원직원을 환자 보호자처럼 외래창구쪽에 세워논 뒤 환자대상 인터뷰에 응하게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노조는 이같은 편법적인 대응사례를 막기위해 의료기관평가의 틀을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기관의 특성에 맞는 맞춤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
노조는 "현행 의료기관평가는 의료전달체계와 의료기관펼 특성에 관계없이 단순서열을 메기는데 주력하고 있다"며 "의료기관평가가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공공병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지역특성에 맞춘 진료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평가단과 담당기관 또한 공정성을 지닐 수 있는 제3의 독립기구로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공정한 평가를 위해 의료기관평가 담당기관을 정부와 병원계가 아닌 제3의 독립기구로 변경하고 복지부, 보건노조, 병협, 시민단체, 공익전문가가 위원으로 참여하는 '평가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내놨다.
이어 "평가요원도 전문성과 공공성을 위해 별도의 전문평가요원을 육성, 배치해야 하며 노조와 시민들, 소비자단체가 보다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평가자체도 예고된 일정과 무관하게 불시에 불규칙하게 해야 지금처럼 형식적인 일회성 평가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