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의학과 전문의로 봉직하면서 다년간 CT 등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방사선에 노출돼 만성 골수성 백혈병 등이 발병해 사망했다면 병원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그 동안 논란이 된 영상의학과 의료진들의 방사선 피폭과 관련, 병원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어서 병원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망인이 된 영상의학과 전문의 K씨의 유가족이 J의료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최근 이같이 판결했다.
K씨는 1993년부터 2002년 8월까지 J의료재단 산하 병원의 유일한 영상의학과 전문의로 근무하다 방사선 피부염에 이어 만성 골수성 백혈병, 편평상피세포암이 발병해 사망했다.
그러자 유족들은 망인이 많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수년간 방사선 검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양의 방사선에 노출돼 암이 발생했고, 피고 병원이 발병 사실을 알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K씨에게 계속 근무하도록 한 결과 사망했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피고 병원은 적어도 망인으로부터 만성 방사선 피부염이 발병했다는 보고를 받은 후에는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방사선에 노출됐음을 알았다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따라서 병원은 다른 전문의를 고용하거나 병원의 물적 시설을 개선하는 등 방사선 노출량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조치 없이 K씨를 계속 근무하게 했다는 점에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법원은 망인이 후유증 발병 가능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정기적인 신체검사 등을 게을리한 점, 병원에 근로조건 개선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해 병원의 책임범위를 40%로 제한, 3억 7천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원고 소송대리인인 대외법률사무소 현두륜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과다한 방사선 피폭으로 인해 질병이 발생했다면 병원측에 관리 소홀 및 안전제공의무 위반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고 밝혔다.
또 현 변호사는 “병의원은 전문의를 포함한 근로자의 업무 환경 개선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준 판결”고 덧붙였다.